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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면 송영금 어르신(1933~) 구술생애사
안남면 송영금 어르신(1933~) 구술생애사
  • 옥천닷컴
  • 승인 2019.10.03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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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당신이 너무 좋았어요.

 

세월이 많이 흘렀네요. 진작 한글을 익혔으면 당신 생전에 마음을 전했을 텐데요. 늙어진 87, 당신을 만난 지 70년이 흐른 지금, 글자를 익혀서 당신께 편지를 씁니다.

친정에서는 사랑의 원료만 공급 받고 살았던 귀염둥이였어요. 그 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었던 배고픔을 저는 모르고 살았어요. 남들도 다, 저처럼 사랑을 받으면서 배부르게 살아가는 줄 알았어요. 부모님께 사랑을 받을 대상은 항상 저였으니까요. 당신과 혼인하기 전날. 저를 측은히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눈 속에는 어린 영금이의 19년이 들어있었어요. 제 손을 잡으시고 참고 잘 살아야한다고 하시면서 눈물지으시데요. 그 땐 아버지의 눈물의 의미를 몰랐어요. 아버지의 눈물은 가난한 집에 시집보내게 된 아픔의 눈물이었다는 것을 혼인 다음날 알게 되었어요. 딸의 고생이 보이셨나봐요. 결혼식 다음날 멋쩍은 새색시는 부엌으로 들어갔어요. 친정에서는 흔하게 있던 하얀 쌀이 없었어요. 보리쌀 한 말쯤에 좁쌀이 보이데요. 알고 보니 그것도 꿔다 놓은 거였어요. 그땐 장려 얻어온다 했었지요. 그날 아침까지도 가난이 뭔지 배고픔이 무엇인지 잘 몰랐어요. 배고픈 적이 없었으니까요. 배고픈 것은 못 참겠더라고요. 때가 되면 집집마다 굴뚝에서 밥 하는 신호가 나잖아요. 굴뚝의 연기 말이에요. 저는 빈 가마솥에 물이라도 끓였어요. 남들이 저 집 또 굶나보네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요. 굴뚝에서 피어나는 연기는 나도 밥 먹는다.”하는 자존심의 표시였으니까요. 배고픔보다 우리 집 굴뚝을 바라보며 혀끝을 차는 사람들의 눈길이 더 싫었어요.

당신이 군대로 떠나던 날. 아프고 서러웠죠. 시집보내신 아버지를 원망했어요. 친정 부모님이 미웠어요. 그래도 전 당신이 좋았어요. 천사같이 곱다고 했으니까요. 친정아버지 보다 저를 더 이뻐했으니까요. 고생시켜서 미안한 내색시라고 말 했으니까요. , 당신의 고운 마음을 알았으니까요. 밭둑길을 걸으며 이름 모를 풀꽃을 꺽은 당신은 말했지요. 이쁜 손에 호미를 들게 해서 미안하다고요. 제 손에 꽃을 쥐어준 남편이었으니까요. “그 날, 당신이 너무 좋았어요.”

떠나기 전 날 밤. 밤새 눈물을 참던 당신을 기억합니다. 울음도 꾸역꾸역 참고 있는 울음소리를 들었으니까요. 떠나던 당신 뒷모습의 서러움을 전, 알았으니까요. 뒷모습은 절대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당신이 떠나는 날 처음으로 알았어요. 미안하다는 말을 당신의 뒷자락을 보면서 수도 없이 느꼈으니까요. 그때 제가 글을 알았더라면 미안해하지 말라고그리움의 편지를 썼을 텐데요. 참고 살아야한다고 당부하신 친정아버지의 목소리를 기억했습니다. 잊지 않으려고 당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맹세했습니다. 실천했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삶인가 생각했어요. 당신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했어요. 당신만 돌아온다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겠다고요. 기원대로 당신은 건강하게 돌아왔어요. 하늘께 감사의 기도를 했습니다. 근데요. 사람 마음은 간사하대요. 당신만 건강하게 무사히 돌려준다면 그 무엇도 원하지 않겠다던 제가 물질을 욕심내며 왜 난, 가난하냐고원망의 목소리를 내뱉더라고요. 전 알았어요. 당신이 제게 건강하게 돌아온 것이 제 인생의 최고의 복이었던 것을요. 당신이 제게는 제일 큰 행운인 것을요. 행복과 행운을 주신 하늘께 감사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했습니다. 긴 세월 해로하게 해준 신께 감사할 뿐입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태어난 우리들의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호강 한 번 못 시킨 내 새끼들 이잖아요. 너무 고마워서 눈만 뜨면 그리운 자식들입니다. 못 해준 게 많아서 아픈 자식들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미안한 사람은 새끼들이네요. 당신도 고마운 자식들이라고 받기만 하는 아비라고술 한 잔 하시면 당신 혼자만의 넋두리를 들을 때면 가슴이 아팠습니다. 나또한 속으로만 대답했어요.

그러게요. 미안하고 고마운 내 새끼들입니다.”

가을이 익어 갑니다. 더위에 지쳤던 해님도 이젠 마당의 평상에서 낮잠을 잡니다. 가지랑 호박이랑 썰어서 널어야겠어요. 고마운 자식들한테 나눠주려고요. 텃밭에 조금 심은 고추도 빨갛게 옷을 입었네요. 해님한테 부탁 좀 해야겠어요. 우리 집 마당에서 많이 좀 놀다 가라고요. 멍석위에 고추 좀 어여삐 여겨 달라고요. 미안한 새끼들한테 나눠줘야 한다고요.

서투른 글자로 적어 보려니 힘이 듭니다. 매미소리는 누굴 찾는지 울어 댑니다. 나도 당신을 그리워하는 목소리로 적어봅니다. 지난여름 49제에서 만난 당신. 당신이 너무 보고 싶네요.

당신의 아내. 송 영 금.

이영순 작가
이영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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