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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옥천 상생, 시민운동 꿈꾸는 대전YMCA 조광휘 이사장
대전-옥천 상생, 시민운동 꿈꾸는 대전YMCA 조광휘 이사장
  • 황민호
  • 승인 2019.10.02 0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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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북면 지오리가 고향, 동이면 평산리 유기비료회사 카프코 대표
대전YMCA 이사장 연임, 인권-환경-농업-소비자 등 광폭행보
옥천중총동문회장, 옥천과 대전 상하류간, 도농 교류 물꼬 틀터
대전 청렴시민관협의회 참여한 사진, 조광휘 대전YMCA이사장은 대전 시민사회에서 광폭행보를 하고 있다.
대전 청렴시민관협의회 참여한 사진, 조광휘 대전YMCA이사장은 대전 시민사회에서 광폭행보를 하고 있다.

 갑자기 기울었던 가세는 어릴 적 크나큰 시련이었다. 4남매 중 장남, 짊어져야 할 짐은 산더미 같았고 학교를 갈 여력도 등록금을 낼 형편도 안 될 만큼 빠듯했다. 사연은 복잡다단했다. 헌병대장 부관으로 대위로 퇴직한 아버지는 당시만 해도 먹고 살만 했다. 연고가 없었던 군북면 지오리 부엉배미에서 추소리 방향으로 굴을 뚫는 사업을 한 것이 큰 화근이었다. 물을 흘러내려 보내 수많은 농토를 확보한다는 계획은 기술 개발의 차질로 투자금을 회수도 못한 채 그야말로 ‘쫄딱’ 망했다. 죽향초 학구인데 부모님의 교육열로 읍내 학교인 삼양초를 다녔는데 한참 돌아 학교를 걸어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집안 사정은 한참 기울었고 몸은 고됐다. 

 삼양초(23회), 옥천중(20회)을 졸업하고 그는 고등학교 진학을 못한 채 인천에 있었던 중앙직업훈련원(현 폴리텍)의 자동차정비과에 입학해 하루종일 기름때를 묻혔다. 낯설고 물 설은 곳에서 어린 시절 집에서 떨어져 나와 외롭게 산다는 것 자체가 고행이었다. 그 때 그의 외로움을 덜어주었던 것이 감리교회였다. 마음속 공허함을 채워줬고 삶의 지향을 안내했다. 교회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난 신앙은 감리교회가 그랬듯이 지역 사회로 자연스레 향했다. 감리교단이 만든 YMCA와 인연을 맺은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생계는 생계대로, 신앙은 신앙대로, 지역사회 봉사는 봉사대로, 그의 삶은 다방면으로 ‘진군'했다. 자동차 정비공을 거쳐 와이셔츠 단추공장과 모직유통회사를 거쳐 비료회사 총괄에서 대표까지 이르는 과정은 정말 다채로운 인생사를 보는 듯 했다. 그는 어느덧 해외로 친환경유기비료를 수출하는 중견기업인이 되어 있었고 대전YMCA 이사장을 연임하여 벌써 3년째인 옥천과 대전에서 나름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사가 됐다. 카프코(동이면 평산리 소재)의 대표이자, 대전YMCA 조광휘(65) 이사장을 1일 대전에서 만났다. 

어려웠던 유년시절

 “아버지가 육군 대위 출신인데 헌병대장 부관을 했어요. 당시 정일권 국무총리 시절 퇴직 후에 이런 사업을 하겠다고 해서 정 총리하고도 국비 지원 등을 이야기하며 퇴역한 서재원 대장과 함께 군북면 지오리에서 사업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산에 굴을 뚫어서 추소리 쪽으로 물줄기를 바꿔 하천부지에 광활한 농토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이었는데요. 투자도 많이 받고 본인 돈도 많이 쓰면서 사업을 진행했는데 기술 개발이 굴을 뚫을 정도가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하다가 망해버렸죠. 가세는 급격하게 기울었어요. 그 이후로 간척사업은 바다 쪽으로 다 향했죠.”

 가세가 기울었지만, 교육열은 상당해 당시 학구였던 죽향초보다 읍에 있는 큰 학교인 삼양초를 보냈다. 동아서적 하는 천세헌, 전순표씨 등이 다 어릴적 친구들이다. 

 옥천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진학할 형편이 안 됐다. 당시 인천에 있던 중앙직업훈련학교, 지금으로 말하면 폴리텍 자동차정비과에 입학해 2년 동안 배웠다. 졸업 이후에 부산 기아자동차 공장에 내려가서 76년부터 78년까지 2년 동안 차량정비사를 했다. 온 몸에 기름 때를 묻혀가고 하루종일 자동차 구석구석을 매만지던 작업이 쉬운 게 아니었다. 그는 군대 가기 2년 전 대전 삼성초등학교 인근에 있던 와이셔츠 단추공장인 유창양행에 취업하여 작업반장까지 올랐다. 일머리가 있었던 것이다. 일을 곧잘 해 칭찬을 받았다. 군대 다녀와서도 꼭 다시 오라고 할 정도였고 휴가 중에도 회사에서 휴가비도 챙겨줄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써줬다. 파주 적성에 있던 25사단에서 지프차위에 106M 무반동총 사수로 3년 동안 군 생활을 한 후에 그는 다시 대전으로 왔다. 계획대로라면 유창양행에 다시 복귀하는 것이 수순이었지만, 이모부의 제안은 솔깃하게 다가왔다. 대전역 앞에서 모직 도매상인 ‘서파라사’를 운영하고 있던 이모부는 광범위하게 충청 호남지역의 소매상을 꽉 잡고 모직 도매유통을 크게 하고 있었다. “광휘야! 너 유창양행으로 가면 기껏 올라가봐야 공장장 밖에 더 하겠니. 이모부랑 같이 일하면 사장도 할 수 있어” 라는 그 말은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유창양행으로 가는 걸 포기하고 서파라사에 합류했다. 22살 즈음에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뒤이어 바로 돌아가시는 아픔을 겪었다. 이제 정말 홀로였다. 혼자 동생들을 건사하며 살아야 했기 떄문에 짊어진 삶의 무게는 상당했다. 

조광휘 이사장은 대전 8개 소비자단체 주관단체로 활동하며 소비자주권 확보에도 노력하고 있다.
조광휘 이사장은 대전 8개 소비자단체 주관단체로 활동하며 소비자주권 확보에도 노력하고 있다.
조광휘 이사장은 대전 8개 소비자단체 주관단체로 활동하며 소비자주권 확보에도 노력하고 있다.
조광휘 이사장은 대전 8개 소비자단체 주관단체로 활동하며 소비자주권 확보에도 노력하고 있다.
조광휘 이사장은 대전 8개 소비자단체 주관단체로 활동하며 소비자주권 확보에도 노력하고 있다.
조광휘 이사장은 대전 8개 소비자단체 주관단체로 활동하며 소비자주권 확보에도 노력하고 있다.
조광휘 이사장은 대전 8개 소비자단체 주관단체로 활동하며 소비자주권 확보에도 노력하고 있다.
조광휘 이사장은 대전 8개 소비자단체 주관단체로 활동하며 소비자주권 확보에도 노력하고 있다.
조광휘 이사장은 대전 8개 소비자단체 주관단체로 활동하며 소비자주권 확보에도 노력하고 있다.
조광휘 이사장은 대전 8개 소비자단체 주관단체로 활동하며 소비자주권 확보에도 노력하고 있다.

기업가로 성장하다

 “그 당시 제일모직 같은데서 옷감을 뗴어서 양복점 등 소매점에 물건을 대어주는 중간 도매상이었지요. 양복 한벌 맞추는데 보통 2마7치가 들어가고, 조금 큰 사람은 3마 정도가 필요했죠. 제가 옷 만드는 정보에는 일가견이 있었는데요. 이모부가 사업을 확장했어요. 사업이 꽤 잘 됐거든요. 직원 7명인데 월매출이 1억원이었으면 엄청났죠. 아마 대전에서 소득 1위의 기업이었을 거에요. 근데 무리하게 대화공단에 있는 한성화학공업주식회사라는 비료회사를 인수한 것이 어떤 분기점이 되었던 것 같아요. 결국 부도를 맞았죠. 이 부도를 어떻게든 해결하겠기에 제가 ‘구원투수'로 86년 2월에 투입된 것 같아요. 그 회사는 규모가 제법 컸어요. 직원 테니스장과 연구실이 있을 정도로요.”

 그는 새로운 일을 도전적으로 즐겼다. 벌써 자동차 정비에서 와이셔츠 단추공장, 그리고 모직 중간도매유통을 경유해 이제 비료공장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잘 하고 있는 일에 의존하다 보면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는 도전정신이 투철했다. 밑바닥부터 화학 공부를 새로 했다. 그리고 배운 모든 것을 응용했다. 각 재료를 혼합하고 좋은 비료를 만드는 공정을 위해 기계를 새로 만들고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리더쉽’을 발휘하며 회사를 이끌어 나갔다. 

 결국 노력을 했지만 회사는 부도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렇게 실패를 받아들였다면 오늘날 ‘조광휘’는 없었는지 모른다. 그는 함께 한 노동자들과 함께 군서면 월전리로 회사를 옮겨 다시 시작한다. 20명 정도 직원을 고스란히 데리고 왔다. 이후에도 시련은 계속됐다. 대전 태평동주공아파트 전세 대출을 받아서 국제종합기계 정문 창고로 공장을 다시 옮겨 이름도 ‘한성산업’이라고 바꾸면서 새출발을 했고 다시 95년에 지금 공장 위치인 동이면 평산리로 옮기면서 98년 법인으로 전환 후 2000년에  ‘카프코’로 기업명을 바꾸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새로 사업을 일으키는 데는 포항의 대풍농약사 사장님 등 평소 신뢰를 갖고 거래를 하셨던 분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다. 사람을 믿고 투자한 지인들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직원이 자그마치 30명이다. 적지 않은 기업이다. 체코, 우즈베키스탄, 태국, 배트남, 중국 등 13개국에 수출할 정도로 유망기업이다. 

 그는 일하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겼다. 노동자가 없이는 기업도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고 노동자 복지를 최우선의 가치로 여겼다. 그리고 마음을 모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2000년대 초 걷기가 전국민 유행으로 번졌을 때 동이면 평산리에서 대둔산까지 도보 걷기를 전 직원이 함께 하며 대둔산 등반까지 하면서 의지를. 다졌고 2016년까지 2년에 한번씩 전직원이 일주일 동안 회사문을 닫고 해외여행을 진행했다. 요즘엔 회사가 어려워서 잠시 쉬고 있지만, 그의 회사 경영철학은 분명하다. ‘함께 같이 살자.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회사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노동자가 있기 떄문에 회사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조성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하구요.”

대전 로컬푸드 한마당과 도농교류 상생협약식에 참여하는 모습, 조광휘 대전YMCA이사장은 재임시절 로컬푸드를 중점적으로 추진하려 노력하고 있다.
대전 로컬푸드 한마당과 도농교류 상생협약식에 참여하는 모습, 조광휘 대전YMCA이사장은 재임시절 로컬푸드를 중점적으로 추진하려 노력하고 있다.
대전 로컬푸드 한마당과 도농교류 상생협약식에 참여하는 모습, 조광휘 대전YMCA이사장은 재임시절 로컬푸드를 중점적으로 추진하려 노력하고 있다.
대전 로컬푸드 한마당과 도농교류 상생협약식에 참여하는 모습, 조광휘 대전YMCA이사장은 재임시절 로컬푸드를 중점적으로 추진하려 노력하고 있다.
대전 로컬푸드 한마당과 도농교류 상생협약식에 참여하는 모습, 조광휘 대전YMCA이사장은 재임시절 로컬푸드를 중점적으로 추진하려 노력하고 있다.
대전 로컬푸드 한마당과 도농교류 상생협약식에 참여하는 모습, 조광휘 대전YMCA이사장은 재임시절 로컬푸드를 중점적으로 추진하려 노력하고 있다.
대전 로컬푸드 한마당과 도농교류 상생협약식에 참여하는 모습, 조광휘 대전YMCA이사장은 재임시절 로컬푸드를 중점적으로 추진하려 노력하고 있다.
대전 로컬푸드 한마당과 도농교류 상생협약식에 참여하는 모습, 조광휘 대전YMCA이사장은 재임시절 로컬푸드를 중점적으로 추진하려 노력하고 있다.
대전 로컬푸드 한마당과 도농교류 상생협약식에 참여하는 모습, 조광휘 대전YMCA이사장은 재임시절 로컬푸드를 중점적으로 추진하려 노력하고 있다.
대전 로컬푸드 한마당과 도농교류 상생협약식에 참여하는 모습, 조광휘 대전YMCA이사장은 재임시절 로컬푸드를 중점적으로 추진하려 노력하고 있다.
대전 로컬푸드 한마당과 도농교류 상생협약식에 참여하는 모습, 조광휘 대전YMCA이사장은 재임시절 로컬푸드를 중점적으로 추진하려 노력하고 있다.
대전 로컬푸드 한마당과 도농교류 상생협약식에 참여하는 모습, 조광휘 대전YMCA이사장은 재임시절 로컬푸드를 중점적으로 추진하려 노력하고 있다.

YMCA를 통해 로컬푸드사업과 지역사회 봉사를 하다

감리교회는 삶을 버티게 해주는 신앙이었고 감리교에서 만든 YMCA는 지역사회 다양한 부문에서 활동을 하게 한 어떤 디딤돌 같은 존재였다. 대전YMCA 이사 활동을 하다가 2017년 이사장에 취임했다. 교회 안에 갇혀 있지 않고 교회 밖으로 지역사회와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바꿔내자는 그 취지를 살려 그는 다방면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가 취임하면서 역점사업으로 시작한 것이 바로 ‘로컬푸드’사업이다. 

대전 남선체육공원종합체육관 1층에 '라온아띠'란 로컬푸드협동조합 매장을 내고 매주 수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로컬푸드 직거래장터도 열고 있다. 청성면 산계리의 이선우, 안남면 덕실리의 송윤섭 농민 등과 함께 로컬푸드 매장에 인근 지역 농산물을 많이 진열해 팔고 있다. 특히 옥천 농산물은 남다르다. 고향이라는 정서적 친밀감도 있지만, 환경적인 부분에서 대청호 물을 맑게하는 친환경농산물을 유통하는 것 자체가 물과 땅을 살리고 농민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떄문이다. 특히 대청호로 인해 마을수몰과 개발제한을 당하는 여러가지 피해를 겪어왔던 옥천의 농민들에게 그 대청호 물을 먹는 대전 주민들에게 옥천산 농산물을 공급하는 것 자체가 여러 함의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한다. “로컬푸드 사업을 진행하면서 소농의 어려움을 알게되었지요. 그리고 옥천과 대전의 농산물 교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했구요.” 그는 이 뿐만 아니라 대전시를 꾸준히 설득해 시 예산 사업으로 세자녀 이상의 가정에 한달에 한번 3만원 가량의 계란, 제철 과일과 채소, 잡곡 등 8가지 품목의 로컬푸드 꾸러미를 보내준다. 그게 150가정이다. 이 사업은 대덕구도 벤치마킹해 더 폭넓게 정책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로컬푸드로 대표되는 농업 뿐 아니라 대전YMCA는 대전광역시 인권센터와 대전시 환경시설주변지역지원센터 등을 위탁 운영하고 소비자단체 주관단체로 소비자 운동도 펼쳐 나가고 있다. 대전YMCA 활동가들만 28명, 카프코 기업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대전YMCA에서는 시민사업부, 청소년부, 회원운영부, 사회교육부, 체육교육부, 아기스포츠단 등 여러 사업부서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1일 대전 YMCA에서 인터뷰한 조광휘 이사장
1일 대전 YMCA에서 인터뷰한 조광휘 이사장

옥천과 대전 같은 생활권 상생해야

 그의 포부는 크다. 옥천과 대전이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인근 지자체로 상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변했다. 물과 농산물로 연결되어 있는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에 깨끗한 물과 친환경농산물 먹을거리로 단단하게 결속되어서 자연스러운 교류가 활성화 되어야 한다고 강변했다. 주소지는 옥천에 있고 대전에도 집이 있는 조광휘 이사장이 그 가교 구실을 하겠다고 설파했다. 

 “함께 살아야 합니다. 향후 대전 YMCA를 통해 옥천과 대전 청소년들의 만남도 주선하며 교류를 하는 것도 고민해보겠습니다. 옥천중학교에는 해마다 개인적으로 장학금을 주고 대전 학생들에게는 대전 YMCA에서 장학금을 주고 있습니다. 이 청소년들이 만나 친구가 된다면 더 좋을 거에요. 인근 농촌 군단위 지자체에도 YMCA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할 거에요. 옥천도 YMCA를 후원하는 와이즈멘클럽이 있었는데 잘 진행이 안 된채 없어졌거든요. 아쉽죠. 옥천에도 YMCA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고민해보겠습니다. 로컬푸드 중요합니다. 요즘 정부에서는 농약과 비료를 어느정도 사용할 수 있는 GAP를 권장하는데 이보다는 친환경농산물로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옥천도 잘하고 있지만, 믿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 품목이 많아지고 우수농산물보다 친환경농산물로 지향을 갖도록 해야 대전과의 교류도 활발해질 거라 확신합니다.”

 그는 뼛속까지 옥천을 사랑하는 옥천 사람이었지만, 대전 시민사회의 중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 접점에서 상하류, 도농상생의 꽃을 피우기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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