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군서면 상중리 귀농 후 친환경 포도 재배
포도 폐원 후 노각·호랑이콩·달래 등 다양한 작목 '친환경' 이어가
23일 농사초보에서 친환경 전문가로 거듭난 한상동씨를 만났다

23일 오후 1시30분 한상동(73, 군서면 상중리)씨를 만났다. 노각(늙은 오이) 수확 막바지에 이르렀다.

[옥천을 살리는 옥천푸드] 본래 나고 자란 곳은 이원면 대동리다. 대동리에서 나고 자라다가 이원면 대성초등학교에 입학했다. 3학년 때까지 대성초서 공부하다 대전으로 이사를 갔다. 대전으로 이사간 뒤 옥천과는 물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멀어졌다. 성인이 된 후 기업은행에 입사했고, 신용보증기금을 거쳐 총 30여년을 금융기관에서 일했다.

옥천으로 다시 돌아고자 마음먹은 건 명예퇴직 이후다. 아내와 함께 조그맣게 농사를 지으며 노후를 보내고 싶었다. 막연한 생각이 구체화된 것은 안내면으로 성묘를 갔을 때다. 안내면에 조상들을 모시는 묘지가 있었는데 그때 만난 6촌 조카가 자신이 사는 군서면 상중리로 올 것을 제안했다.

그렇지 않아도 귀농을 생각했던 터라 조카와 함께 군서면 상중리를 방문했다. 식장산이 멋지게 둘러싼 상중리에 반했다. 한상동(73, 군서면 상중리)씨는 그렇게 2000년 초반 물좋고 공기좋은 상중리에 둥지를 틀었다.

■농사 초보, 한살림 조합원으로 포도 유기농 재배까지 이뤄내다

농사에 대해선 참 무지했다. 어떤 작목을 어떻게 지을지도 잘 몰랐다. 그래서 아예 3년된 노지 포도밭을 인수했다. 노지 포도밭의 소유주는 이돈수씨였다. 당시 이돈수씨는 한살림 조합원으로 '친환경 농업'에 관한 조예가 깊었다. 자연스레 이돈수씨의 추천에 따라 한살림에 가입하게 됐다. 한살림 모임을 통해 차근차근 농업에 대해 알아갔다. 그렇게 노지 포도 밭은 하우스 포도 밭으로 변모했다. 이후 차근차근 저농약, 무농약, 유기농 재배까지 이뤄냈다.

한살림 조합원으로 가입한 후 납품까지 3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고정 판로가 정해져 있지 않아 많이 고생했다. 친환경 포도를 팔아보려고 이리저리 뛰었다.

"한살림이라는 고정 판로처가 생기기 전에는 많이 어려웠어요. 전국 곳곳에 있는 친환경 매장을 찾아다니면서 포도를 팔았죠. 그런데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친환경이라는 자부심은 있어서 싼 값에 넘기는 건 죽어도 싫었고, 그래서 이리저리 뛰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참 포도가 많이 남았었죠."

한살림 납품 이후 포도 판로가 안정화됐다. 매장을 통해 한상동씨네 캠벨 포도를 사 먹은 소비자들에게서 '포도는 또 언제 나오냐', '참 맛있다'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친환경을 고수하기 위해 들였던 시간이 일반 재배에 비해 곱절이었던 만큼, 기뻤고 보람있었다.

한살림은 회원 농가에게 번호를 부여한다. 한상동씨네 농가는 925-5-1이다. 한살림과의 인연을 15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 한상동씨다. 

■포도 폐원 후 노각, 호랑이콩, 달래 짓는 농사꾼으로 변모하다

포도 농사를 그만하겠다고 마음 먹은 건 '이렇게 농사만 짓다가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다.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는 사명감도 컸지만, 여유있게 삶을 돌보는 시간도 필요했다. 그래서 포도 폐원을 결심했다. 하지만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하루 온종일 밭을 돌보던 농사꾼 기질이 어디가랴. 폐원 후 땅을 놀릴 수 없어 이것저것 작게 심어봤다. 아내 조숙희(72)씨와 함께 먹을 용도였다.

"잘 기억은 안나는 데 조선오이 씨를 아는 지인에게 받아서 심게 됐어요. 그 계기로 노각을 400평 가까이 짓게 됐죠. 이외에도 포도 비닐하우스 안에 호랑이콩을 300평, 달래를 100평 정도 키우고 있어요."

한상동씨는 토종 종자인 '조선오이'를 심어 노각으로 키운다. 시중에 노각 씨앗을 따로 팔기도 하는데, 한상동씨네는 조선오이 종자를 고수한다.
조선오이가 자라서 늙으면 '노각'이 된다. 무게가 많이 나가면 2kg까지 나간다. 3월에 심고 한달 정도 지나면 줄기가 뻗기 시작하는데 이때 순을 자르고 가지가 위로 타고 갈 수 있게 작업해야 한다. 한상동씨는 7월부터 납품을 시작했다. 9월 말 정도까지 수확할 예정이다.
한상동씨는 호랑이콩도 직매장에 납품하고 있다. 호랑이콩은 강낭콩의 일종이다. 포슬포슬한 식감에 고소한 맛까지. 쪄먹거나 밥에 넣어 먹으면 좋다. 

친환경으로 평생 농사를 지었기에 한상동씨의 땅은 말 그대로 살아 있었다. 산 땅에는 미생물과 벌레가 많았고 자연스레 이곳에서 농사 짓는 품목들도 '친환경'이라는 이름을 달게 됐다. 조금씩 먹으려고 지은 농사는 규모가 꽤 생겼고, 한살림 납품을 계속 하고 있다. 올해 5월 개장한 옥천 로컬푸드 직매장에도 노각과 호랑이콩 등을 내고 있다.

"옥천살림 주교종 이사를 통해 직매장을 알게 됐어요. 노각과 호랑이콩 등을 납품하고 있습니다. 한 번 직매장에 갈때마다 10개씩 가져다 놓아요. 물론 한살림보다 납품하는 양이 훨씬 작고, 다 팔리지 않아 회수해야 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꾸준히 소비량은 있더라고요."

안전한 먹거리 공급이라는 취지에 동감하고, 건강한 농산물을 제공한다는 자부심이 있다. 특히 옥천에서 이러한 체계를 구성하고 있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 옥천에 거주하는 농사꾼의 사명이라고 본다.

"직매장은 이제 막 시작했기 때문에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다고 봐요. 그래도 옥천에 사는 농부니까, 친환경 옥천 농산물을 옥천에서 소비할 수 있는 로컬푸드 운동에 동참해야죠. 노각은 9월 말 정도면 납품이 끝납니다. 내년 2월 말 즈음에는 달래를 낼 예정이에요. 앞으로도 농부의 자부심을 잃지 않고 안전한 먹거리 공급에 노력하겠습니다."

옥천 로컬푸드 직매장에 진열돼 있는 한상동씨의 노각. 1kg 미만 노각은 2천원, 1kg 200g~300g은 2천500원, 1kg 500g 이상은 3천원으로 책정했다. 농산물 가격을 농민 스스로 결정하는 만큼 시장 조사를 통해 신중히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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