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 문학의 향연

처음에는 모두 남으로 만난다. 한번 맺은 인연으로 평생을 두고 만나기도 하고, 가슴 한편을 쓸어내리는 헛헛한 쓸쓸함으로 남기도 한다. 아직은 인연의 끈을 묶는 일이 서툴러 때때로 엉키거나 끊어지는 일이 있기도 하다. 시작과 같이 이미 정해진 만남이라면 구태여 회피하며 돌아갈 일은 아닐 텐데. 내 마음의 끈을 풀어 놓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터이다. 글에서 만나 글의 맛을 찾아가는 작은 모임이 만들어 준 소중한 인연은 잔디가 옹골차게 머리 내미는 몇 해 전 이맘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교 국어 선생님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문학교술인 차츰 주변으로 알려져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는 주민들에게까지 확대되었다. 지역의 문인들은 물론 다른 지역의 이름 있는 문인들을 초청해 듣는 형식이다. 그 후 서로 작품을 가져와 발표하기도 하고, 의견을 나누는 합평회까지 이어지는 명실공히 제대로 문학공부를 하기에 이르렀다. 2기 수강생 딱지를 단 후로 지금까지 이어지는 문학모임은 나에게 또 다른 길을 열어주었다. 그것은 고여 있는 샘물을 길어 올려 주는 마중물 같기도 하여 새로운 삶으로 이끌게 한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졌다.

한 학기 수업을 마치는 날, 아쉬운 마음에 다들 머뭇거리고 있을 즈음 모임을 이끄신 선생님께서 자택으로 자리를 옮겨 시간을 더 가지자고 제안을 했다. 금세 분꽃러럼 조붓한 웃음이 서로의 눈을 통해 전해지면서 자리를 옮겼다. 조금 뒤처진 나는 자동차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하다 자전거 몇 대만 세워져 있는 곳에 주차를 했다. 다른 차들이 보이지 않았지만, 늦은 탓에 살펴보지 못하고 안으로 들어서기 바빴다. 서예와 그림 그리는 도구들, 그리고 작품이 곳곳에 장사진을 일고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토담방에 우리들은 무릎을 붙이며 앉았다.

서예에 관심을 가져 뒤늦게 공부를 더하셨다는 선생님과 미술을 전공하신 부인이 같이 쓰는 작업실 한쪽에 마련된 방이다. 방 가운데에는 나무가 반으로 잘라진 형태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며 낮은 자태로 우리를 편안하게 반기는 듯했다. 또한 별의 움직임을 볼 수 있는 넓은 창은 부부의 예술적 삶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부인은 손수 만든 수선화 꽃그림이 그려진 부채를 주시고는 쑥스러운 듯 재촉해 안채로 가셨다. 화장기 없는 작은 눈빛에서 방금 받은 수선화를 보듯 고운 심성과 순수함이 엿보인다. 문학의 끝도 없는 물음이 천장을 타고 왕왕 소리를 낼 때쯤이다. 선생님은 차 준비에 바쁘셨다. 꽃잎모양의 나무받침, 입술선 같은 작은 잔들이 나무 상 위에 자리를 잡더니 말로 다하지 못한 사연을 풀어내기라도 하듯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차르르 또르르…….

잔 위로 떨어지는 물소리가 마음에 닿으니 목에서 지르던 소리는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 앉는다. 남으로 만나 어떤 끈으로도 묶일 수밖에 없는 삶이 때론 고이지 않고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문득 혼자 생각에 빠져 한참을 헤어나오지 못했던 그 날이 내겐 이런 기분으로 살아야지 하는 바람을 가지게 했다. 그러고는 차를 대하는 예법과 차의 내력을 말해 주시더니 차 맛이 좋기로 자자한 우롱차를 선보이신다. 아울러 차를 보관하는 방법도 일러주었다. 원래는 숨 쉬는 항아리에 보관하면 좋고 여의치 않으면 장롱 윗부분에 놓아두란다. 본디부터 귀한 차는 높은 곳에 두어야 변하지 않는다는 명인의 말씀이 떠올랐다.

귀한 차 덕에 한껏 분위기가 달아올라 있으려니 이번에는 S라벨이 붙은 양주를 들이미신다. 잔에 따라 놓고 보니 향만 다를 뿐 빛깔이 기막히게 같다. 선생님의 추천으로 차를 마시고 같은 잔에 술을 따라 마시니 그 향이 진하게 느껴진다. 본인 취향에 따라 알아서 마시라고 가운데 놓아두니 의외로 잘 어울렸다. 그 향기가 방 안에 가득하고 서로에게 반사되는 얼굴에서 알 수 없는 빛이 감돌았다. 이제 와 보니 그것은 바로 향과 사람에 취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생소한 경험이라선지 아니면 차를 안주 삼아 같은 빛깔의 술을 마신 까닭인지 평소보다 양볼이 불그스레해 졌다. 그 홧홧함이 가슴으로 내려오면서 우리는 속내를 드러냈고, 그 마음 자락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단단히 묶이는 것 같았다. 그 끈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채 우리 곁에 있다.

그 인연은 바람을 타고 사모님이 딸아이의 미술선생님으로 이어졌다.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진 않았지만 가끔 모임에 오시니 무척이나 반갑다. 아이에게까지 이어지는 끄나풀을 놓고 싶지 않아 미술공부 열심히 하라고 해대는 속보이는 엄마가 되기도 했다. 일이 있어 근처에 갔다 선생님 댁에 들렀는데, 인기척이 없어 잠깐 그늘에 앉았다. 잔디를 내려다보니 한쪽에 숭숭한 자리가 보여 가까이 가보았다. 그런데 그 자리에만 잔디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해 흘깃흘깃 흙이 보인다. 순간 그날이 떠올랐다. 그곳에 차가 없었던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어두워 잘 분간하지 못했더라도 무척 창피한 일이다. 이런 무지가 나를 그늘에서 벗어나게 했고, 한동안 짱짱한 태양 아래 벌서듯 서 있게 했다.

자신을 위한 인연의 끈을 만들기 바빠 다른 것을 살펴보는 일에 소홀했던 어리석음이 나를 누른다. 잔디는 자동차 바퀴와 밟히는 연으로 만나 얼마나 아팠을까? 선택해서 만나는 것이면 누군들 그런 인연을 바랄까? 하지만 잔디는 후덕한 주인과 그날의 바람을 만나 그 자리에서 다시 초록의 싱싱함으로 되살아날 것이다.

가끔은 글 안에서 서성거릴 때가 있다. 오히려 글 밖에 있는 것이 행복한 일은 아닌가 반문해 보기도 한다. 요즘 들어 어떤 끈을 붙잡아야 할지 무척 고민스럽다. 지금껏 내가 잡고 있던 많은 끈들이 자못 의심스러워진다. 여태껏 누군가의 끈을 잡고 그리고 묶고 풀고를 수없이 반복했다. 또다시 알 수 없는 끈에 이끌린 나를 발견한다.

한번쯤 나도 누군가에게 풀리지 않는 끈이면 좋겠다.

-김영미, 옥천, 물빛 그리움,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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