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 문학의 향연

유월의 어느 날 차를 타고 지나는데 담장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넝쿨 장미의 물결이 끝없이 이어지는 거야 아주 오래 전 아니 생각하니 그렇게 오래도 아니고 그러니까 얼마 전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잊고 살았던 그이가 떠올랐어 장미가 피던 계절에 그이와 함께 그 길을 걸었던 것 같아 그 길을 걷다 사랑한다는 고백을 들었어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번히 알면서도 행복했어 그땐 죽도록 죽어서도 사랑한다며 죽음도 우릴 갈라 놓지 못 할거라며 날마다 침이 말랐었지 지금은 멀리 떨어져 서로 소식도 모르지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아직도 죽지 않고 버젓이 살아 있지 우연히 길을 지나다 담벽에 핀 장미를 보아야 그 때가 그리워지는 것을 합리적으로 생각하니 망각을 주신 신은 참 위대한 분 같아 그러는 사이 차는 모퉁이를 돌아 거칠 것 없이 고속도로로 접어들었어 휴게소에 들러 호두과자를 먹을까 호떡을 먹을까라는 일상의 고민이 혹독한 그리움을 금방 밀어내더라고 글쎄.

-이점구, 옥천민예총·옥천문학회 문학동인지 제20너와 나의 숨은 꽃,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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