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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 안의 유토피아, 이상 속의 고향
화폭 안의 유토피아, 이상 속의 고향
  • 조서연
  • 승인 2019.09.05 1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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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초-옥천여중-옥천상고의 옥천 토박이
화폭 안에는 자신의 유토피아를 담아
'알록달록 드림공작단' 선생님, 앞으로도 가르치는 일 하고 싶어

[르네상스 옥천] 르네상스 옥천의 두 번째 지역예술인, 권유미(25, 옥천읍 양수리) 서양화 작가를 만났다. 권유미 작가는 삼양초등학교, 옥천여자중학교, 옥천상업고등학교(현 충북산업과학고)를 나온 옥천 토박이다. 심지어는 대학교도 집 근처 한남대학교 회화과를 다녔다(!). 대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뭘 하냐고? 민예총 옥천지부의 회원이 되었다!

 무척 젊은 작가인데도 무작정 옥천을 떠나고만 싶어하는 다른 젊은이들의 행보와는 퍽 다르다. 오히려 옥천 안에서 머물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권유미 작가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권유미 작가의 작품에는 권유미 작가만의 유토피아가 담겨 있다. 대학 졸업 시즌이 되면서 장래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고민이 길어지고 깊어지면서 우울감은 점점 커지기만 했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어디로 떠날까? 막상 갈 곳이 없다. 막막하기만 하다. 평생 살아온 고향 옥천을 두고 어디를 갈까.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릴 때 살던 가화리 집, 마당에는 풀과 꽃과 나무, 자연에 어머니 품 마냥으로 폭 안겨 살았다. ‘그때는 너무 좋았는데.’ 그 생각을 화폭에 옮겼다.

 식물이 화면을 가득 덮었다. 풀과 나무, 나뭇잎... 그 사이에 보일 듯 말 듯, 누군가가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라보는 얼굴은 무심하다. ‘유토피아(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라는 걸까. 그렇게 권유미 작가는 현실의 고향에 자리한 채 이상의 고향으로 떠날 수 있었다.

 ‘이상의 고향’에서의 권유미 작가를 좀더 살펴보자. 권유미 작가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참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 좋아하는 애’로 통했을 정도. “‘다른 건 몰라도 그림만큼은 다른 애들보다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초등학교 2학년, 그림을 정말 잘 그리는 같은 반 친구를 보고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리면서 연습을 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책상에 그린 권유미 작가의 그림을 보고 ‘잘했다’고 감탄할 때까지.

 그리다 보니 더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옥천에서 크레파스화를 하는 권영숙 작가에게 5년 동안 그림을 배웠다. 또 욕심이 나서 학원을 다니고, 결국은 대학교까지 갔다. ‘참으로 패기가 넘치는 작가다’라는 생각이 물씬물씬 든다.

 아무리 패기가 넘쳐도 이렇게 젊은 사람이 민예총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가입했을 것 같지는 않다. 권유미 작가는 어떻게 민예총에 들어가게 된 걸까? “초여름에 마침 민예총에서 도록 디자인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사무실에서 얘기하다 보니 서양화 전공이라는 얘기가 나온 거죠.” 그 말을 들은 정천영 지부장의 스카웃이 민예총에 발을 들인 계기였다. “막상 와보니 혼자 너무 어려서 적응이 힘들 것 같았는데, 다들 잘 챙겨주셔서 지금은 많이 친해졌어요.” 작품 전시의 기회도 생기고, 지역 예술인들과의 교류도 생기니 금상첨화다. 지용제에서도 함께 전시를 했고, 오는 늦가을에 민예총의 군집 개인전에도 참여한다.

지용제 때 전시했던 작품이다.
지용제 때 전시했던 작품이다.
지용제 때 전시했던 작품이다.
지용제 때 전시했던 작품이다.

 전시 말고 또 뭘 하냐면, 미술 수업도 한다. 행복교육지구의 ‘알록달록 드림공작단’, 여기서는 권유미 선생님이다. 사람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의 첫 한 발짝이다. “요즘은 다들 취미를 많이 찾으시니까,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쉽게 미술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낯가림이 심해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는 게 어려웠던 권유미 작가는 수업을 하면서 스스로의 성장까지 해냈다. 꿈에 확신을 더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마지막의 각오 한 마디를 들었다. “부족한 사람은 되기 싫어요. 민예총의 회원으로서도, 화가로서도, 기본 이상은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여전히 패기가 넘친다. 10월에는 ‘알록달록 드림공작단’의 전시회도 열린다. 현실 속의 고향에 살아가는 젊은 예술가, ‘선생님’의 꿈이 거기에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그 꿈에, 부족함은 결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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