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세, 박영규씨의 막내딸 김효은씨, 트롯가수 장주아 예명으로 맹활약
대전K실용음악학원 부원장, 옥천과 전국 각지 축제 등에 가수로 출연해
‘옥천 대표 트롯 가수가 되는 것이 꿈’, ‘주민이 불러주면 언제든 갈 것'

 안내면 오덕1리, 구비구비 정방재 고개너머 구불구불 한참을 휘돌아가는 도로를 타고 가야 갈 수 있는 옥천에서도 깡촌이었다. 생활권도 보은군 삼승면이라 옥천과는 외돌아졌고 동질감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는 경계에 서 있었다. 보은도 옥천도 아닌 그 경계에서 그렇게 살았다. 이제는 폐교되어 사라진 청성면 능월초등학교를 다녔다. 학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삼삼오오 동네 친구들과 모여 걸어갔다. 270원짜리 승차권을 아낄 요량으로 친구들과 같이 걸어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길 가에 있는 배나무와 배와 사과나무의 사과를 몰래 한개씩 서리해 먹던 그 기억을 아직 잊지 못한다. 한참 배고플 때 얼마나 맛나던지. 배가 그렇게 단지도 몰랐고 사과가 그렇게 맛있는 지도 몰랐다. 주인한테 행여나 들킬까 봐 몰래 하나씩 따서 같이 나눠먹던 그 추억을 잊지 못한다. 친구들 갈래길로 하나둘 떠나고 마지막으로 혼자남아 씩씩하게 걸어다녔을 때도 논과 밭을 양쪽에 낀 호젓한 하교길이 잊혀지지 않는다. 분교였고 학생 수가 작다보니 1학년과 6학년이 함께 한 교실에서 수업을 한 복식학급이었다. 합친 학생 수가 7명, 6학년 언니 오빠들이 잘 가르쳐줘 선생님들이 별로 할게 없었다. 졸업한 지 몇 년 후 점점 학생 수가 줄어들던 학교는 결국 폐교가 되었다. 혼도 많이 났지만, 사랑으로 품어주신 김계원 선생님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때는 몰랐다. 전국 방방골골 다니는 트롯트 가수가 될 줄은 말이다. 

어머니를 따라 안내면 노래교실을 갔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시골에서 농사짓는 여성이 겪고 있는 고충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집안일은 집안일대로 농사일은 농사일대로 아무리 일을 해도 끝이 없다. 복숭아, 포도 부터 시작해서 감자, 옥수수, 고추, 배추, 무, 인삼 등 안 짓는 농사가 없었다. 도무지 무한반복으로 끝이 날 것 같지 않던 일들을 순식간에 헤치우는 어머니의 모습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어머니도 사람인지라 휴식이 필요했다. 숨돌릴 곳 하나 정도는 있어야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있었으리라. 어머니 박영규씨는 노래부르는 것을 참 좋아라 했다. 나도 어머니 따라 어렸을 떄부터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시키면 일을 덜 하게 되서 더 악착같이 노래를 불렀다. 어릴 때 머리를 썼던 나름의 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내 핑계를 대면서 노래교실을 다녔던 것 같다. 시부모님 모시고 면에서 하는 노래교실을 다니겠다고 말하기가 어디 쉬웠겠는가. 막내딸 효은이 노래 배우게 시킨다고 앞세워 데리러 간 것이 안내면 노래교실이었다. 그 떄 노래의 흥을 알았다. 노래 부르는 즐거움을 알았다. 노래를 부르고 율동을 할 때 그 짜릿한 표정들을 잊을 수가 없다. 노래를 부르는 만큼은 해방이 된 것 같았다. 그 때 저렇게 어머니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수 있는 가수가 되어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본격적으로 가수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속리산 중학교가 된 원남중학교를 졸업하고 보은여고를 나왔다. 옥천 동창들이 많이 없는 이유다. 여고 다닐 때는 가수의 꿈이 남아있었던 지라 청주 언니네 가서 매주 토요일마다 근처 판소리 강사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그리고 두말할 것도 없이 당시 공주영상대 실용음악과에 진학했다. 진짜배기 가수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배웠다. 마침 지도교수가 성악 전공이라 성악 창법도 배웠다. 수시로 노래 경연대회에 나갔는데 재학중에 전국노래자랑 세종대회에 출연해 본선 진출을 하기도 했다. 당시 TV에서 김용임의 '사랑의 밧줄’을 부르는 내 모습을 본 교수님은 적극적으로 트롯트가 너에게 잘 맞는 것 같다면서 트롯트 창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트롯트 가수로 매진하기 시작했다. 여러 장르가 있었지만, 구수하고 정겨운 트롯트가 나에게 맞는 옷 같았다. 트롯트 가수 답게 예명도 정했다. 김응세, 박영규씨의 세자매 중 막내딸 김효은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난 가수 장주아로 예명을 지었다. 트롯가수 김용임과 유지나가 그의 롤 모델이다. 

 “트롯트가 정말 좋아요. 아버지가 나훈아를 좋아해서 어렸을 때부터 ‘청춘을 돌려다오’란 노래를 정말 자주 불렀거든요. 구슬프고 한이 서려 있기도 하고 신바람 나는 흥도 있는 트롯트가 제 정서에 딱 맞아요.”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대전으로 왔어요. 어물쩡하게 있다가는 시골에 불려들어가 다시 농사지을 것 같아 얼른 도시에 정착했지요. 졸업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쉽지가 않더라구요.”

뭐든 악착같이 해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어요. 그래서 닥치는 대로 했어요. 실기음악교사 교원자격증도 따고, 레크리에이션 전문교육사 1급, 노래전문지도사 1급, 실버체조전문교육사 1급, 실버댄스전문교육사 1급, 경로운동전문지도사 1급, 웃음전문교육사 1급 등 모든 관련 자격증은 다 땃어요. 노래 경연대회도 수차례 나갔죠. 가수로 등록된 이상 일반 경연대회는 나가지 못하지만, 방송사에서 주최하는 대회는 나갈 수 있거든요. 미스트롯 등의 대회에 나갔지만, 빛은 못 봤죠.”

 노래는 오히려 쉬웠지만, 레크리에이션과 웃음전문교육은 어려웠다고 했다. 나이도 어린데다가 유머를 구사하며 경로당 어르신들을 상대하기엔 아직 연륜이 짧았다. 그래도 해보니까 되더라. 지금은 연령대별로 토크와 노래가 즉흥적으로 가능하다. 그렇게 강사로 활동하다가도 세이백화점 마케팅 디렉터로 활동도 했다. 생계를 유지하려면 여러 알바를 전전해야 했다. 그래도 일에 매몰되지 않고 항시 가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경연대회에 나갔고, 노래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평소 알고 지내던 대전 정림동에서 K실용음악학원 원장을 하던 김응산 원장을 만나 ‘픽업’됐다. 2호점까지 낸 케이실용음악학원의 건물에는 ‘장주아’의 이름과 사진이 크게 걸려 있다. 그는 부원장이란 직함을 갖고 보컬트레이너로 맹렬하게 활약중이다. 어르신들이 연습하는 1호점과 가수의 꿈을 가지고 연습하는 청소년들이 주로 출입하는 2호점을 종횡무진으로 다니면서 가수의 꿈을 키워주고 있다. 얼마전에는 대전 시민가요제에서 초등학교 6학년 제자 윤수현이 인기상을 받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제자를 키워낸다는 게 이런 거구나 느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옥천 대표 가수가 되는 게 꿈

그는 알게 모르게 옥천을 많이 다녀갔다. 청산생선국수축제에도 묘목축제에도, 옥천포도복숭아축제에도 노래를 불렀다. 포도복숭아축제에 엄마는 단호박을 팔어 나왔다. 우리 딸이 노래부른다고 동네사람들과 함께 자랑하고 축하도 해주었다. 뿌듯했다. 울엄마 박영규씨는 가수 장주아의 홍보실장이라 할 정도로 동네방네 막내딸 소문내기에 바쁘다. 그는 신규앨범을 낸 가수다. ‘가슴이 쿵’이란 타이틀곡은 전국 축제장 가서도 꼭 부르고 있다.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안 다니는 곳이 없다. 시장이나 조그만 축제장이나 가리는 곳 없이 아무리 작은 무대라도 최선을 다해 부른다.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가 행복이고 관객의 호응은 ‘엔돌핀’이다. 옥천출신 가수들이 모인 향수가수연합회에도 가입했다. 고향을 자주 찾고 고향 주민들을 위해 노래 부르는 가수가 되는 게 꿈이다. 

고향 하면 할머니 생각이 간절하다

 어머니 아버지가 농사일에 바쁘다 보니 할머니 손에 거의 컸다. 할머니 생각만 하면 그리움과 애정이 용솟음 친다. 그런 할머니가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보낼 위기에 처했을 때도 본인이 한 달음에 달려와서 자주 오겠다고 하며 막았다. 대전에서 안내 오덕리까지 매일 출퇴근하면서 할머니를 보필했다. 할머니는 ‘사랑’이다. 지금도 실용음악학원에서 학원생들과 함께 한달에 한번 요양원에 찾아가서 노래 봉사활동을 하는데 그 떄마다 할머니 생각이 난다. 그리고 틈 날 때마다 농사일을 돕는다. 절기마다 언제가 바쁜 철이라는 것을 몸으로 익힌다. 엄마가 가끔 전화할 때마다 신호를 주면 어김없이 달려간다. 몸빼를 둘러입고 농작업모드로 변신하면 화려한 트롯가수를 온데간데 찾을 수 없다. 영락없는 시골 아낙이다. 어릴 적부터 해온 농사일이라 속에 익숙하다. 

 “제 나이가 이제 27살이에요. 저를 키워준 옥천을 잊을 수가 없지요. 부모님과 할머니가 거기 계신데요. 어렸을 때 가수의 꿈을 키워 준 안내면 노래교실을 어떻게 잊겠어요. 옥천과 보은 두 지역의 경계에서 나름 재미있게 성장했던 것 같아요. 옥천 트롯 가수 장주아, 기억해주세요. 옥천을 대표하는 신예 트롯가수랍니다. 송가인처럼 어느 순간 방송에 나와 옥천을 알릴 기회가 있지 않겠어요. 꼭 방송에 나오지 않더라도 주민 여러분이 불러주신다면 언제든 한달음에 달려갈 거에요. 옥천 대표가수 장주아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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