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올바름 외면한 채 역행하는 세계
여전한 차별과 혐오 속 또 하나의 흑인들
조영환 (옥천신문 전 기자)

인종차별이 공연히 자행되던 20세기 미국, 백악관에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흑인 집사 ‘버틀러’가 있었다. 이들은 백인 주류사회에 동화된 흑인의 상징이었다. 

때문에 백인에게는 동료와 하인 그 어디쯤의 대우를 받았고, 같은 흑인에게는 ‘백인에 영합한 비겁자’, ‘자발적 노예’라는 비난을 듣곤 했다.

<버틀러 : 대통령의 집사>(2013)는 흑인에 대한 폭력이 끊이지 않던 시대, 버틀러의 삶을 꿋꿋이 살아낸 세실 게인즈(포레스트 휘태커)의 이야기다. (실존 인물인 유진 앨런의 삶을 영화화했다) 그는 노력에 따라 흑인도 얼마든지 백인 사이에 설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아들은 세실을 비겁하다 여겼고, 그는 섭섭함에 화를 냈다. 그 분노에조차 버틀러로서의 자부심이 녹아있었다. “우리가 쓰는 돈, 내가 버틀러로 벌었다!”

시간이 갈수록 세실은 흑인의 현실을 실감한다. 본분에 충실하다는 미덕이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평등을 외치던 존 F. 케네디가 저격당했고, 린든 B. 존슨의 기념비적 ‘1964년 민권법’은 현실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20년째 같은 봉급에, 승진 한번 없었다. 백인 동료는 온화했으나, 결코 진실한 친구는 아니었다. 

각성한 그는 적극적으로 급여인상과 승진을 요구한다. 인권운동가 아들을 몰래 찾아가 연설을 듣고, 무언의 지지를 보탠다. 세기가 바뀌고 2008년, 수십 년간 꾸준히 모인 그들의 발걸음은 아프리카계 흑인 버락 오바마를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하기에 이르고, 늙은 버틀러는 아내와 함께 그에게 표를 던진다. 마침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다.

마지막 장면. 세실은 대농장의 노예였던 아버지의 시계를 차고, 케네디가 남긴 넥타이를 매고, 존슨이 준 넥타이핀을 꽂은 채 백악관에 들어선다. 34년간 8명의 대통령을 모신 그의 삶에 국가가 감사를 표하는 자리. 대통령 집무실을 지키는 경호원도, 그를 안내하는 관료도 모두 흑인이다. 세실은 이 순간을 통해 비로소 ‘하인으로서의 봉사’가 아닌, ‘관리자로서의 노고’를 인정받게 된다. 바야흐로 진정한 ‘국가의 탄생’이다.

개인적으로 미국은 결코 존경하거나 본받을 만한 나라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10년 전 그곳은 이렇듯 정치적 올바름 하나는 충만한 공간이었다. 

어떤 미국 시민은 넘치는 자부심을 이기지 못한 채 제 조국을 ‘현대적 민주주의의 종가’라 칭했는데, 당시의 나는 표현이 과하다 싶었을 뿐 그것이 완전히 틀려먹은 이야기라 생각지는 않았다.

안타깝게도 더 이상 그런 미국은 없다. 세계적으로 타자에 대한 혐오가 극심하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속도로 우경화하고 있다. 대통령이 유색인종 국회의원에게 ‘원래 나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곳, 흑인 유권자가 많은 지역이 ‘쥐가 많은 시궁창’이라 표현되는 곳. 오늘의 미국은 바로 그런 장소다. 

자연스레 한국의 현실이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이곳 또한 결코 타자에 관대한 사회가 아니기에 그렇다. 

결혼이주여성이 남편에게 폭행당하는 영상이 온 메인뉴스를 도배해도, 이튿날이면 ‘영주권 얻으려고 계획한 것이니 속지 말자’는 폭언이 난무하는 사회. 이주노동자가 의사소통을 이유로 고용주에게 맞아도, 이내 ‘해외에서 일하려면 언어 정도는 배워 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폭력이 횡행하는 나라. 동성애 반대는 말해봐야 입만 아프고, 어쨌든 우리는 소수자에게 이미 그런 존재 아닌가.

집단은 항상 공격할 대상을 찾아 나선다. 상대가 우리 몫을 빼앗아 간다고 여기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화풀이할 누군가 필요한 것일까. 이유야 어쨌건, 현재의 한국이 미국 대통령의 인종차별을 보며 정치적 올바름을 운운할 자격은 없어 보인다. 우리는 세실과 그 이웃이 살면서 수없이 맞닥뜨렸을 ‘Colored’라는 말이, 비단 흑인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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