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7시 문화예술회관 공연장, 이날 공연은 사실주의 극작가 차범석의 연극 ‘산불’이 준비됐습니다. 6.25전쟁 이후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마을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재현한 이 연극은 평소 우리고장에서 보기 쉽지 않은 전통연극입니다. 하지만 그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관객석에서는 기대감뿐 아니라 묘한 긴장감이 함께 감돌고 있습니다. "우리 엄마 연습 많이 했으니까 잘하겠지?" 앞좌석에 자리 잡은 죽향초등학교 4학년 진영이가 옆에 앉은 아빠를 향해 소곤거립니다.

이날 초연한 연극 ‘산불’의 공연진은 우리고장 주민들의 엄마이자 아빠, 며느리, 손녀딸, 혹은 친구들입니다. 자발적으로 모집에 참여해 약 2개월에 걸쳐 연습했습니다. 이들이 공연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바로 옆에서 지켜본 관객들은 두근거림을 숨길 수 없습니다. 공연에 빨려 들어갈듯 오감을 집중합니다. 웃음을 유도한 장면에서는 당연히 웃음이 터지는데, 그렇지 않은 부분에서도 자꾸 웃음이 터집니다. “우리 엄마 정말 잘하잖아!”

배우와 관객, 모두 함께 행복한 시간입니다. 이날 하루가 있기까지 배우들에게는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요. 공연 전 잠시 시간을 얻어 한 명 한 명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다만 끝순이 역을 맡은 오수민씨는 개인적인 이유로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아쉽지만 사진만 싣습니다.

조현미(점례역,37,옥천읍 장야리)

"동화구연 맘스토리 회장 일을 맡고 있어요. 이번에 연극을 배우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신청을 했어요. 그런데 웬걸요. 동화구연 어투가 정통연극이랑 톤이 완전히 달라서 오히려 더 고생했어요(웃음). 너 그렇게 좀 말하지 말라구, 연출 이은희 선생님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처음에는 여자 다섯 명이 신청을 해서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했거든요. 과부 이야기나 수녀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냐? 하고 농담했는데, 정말 과부 이야기가 될 줄이야(웃음). 아마 이번 관객의 절반은 지인들이겠죠. 분위기는 정말 좋을 거 같아요. 서로 다 아는 사람들이니까, 얼마나 신기하겠어요. 그리고 그 앞에서 연극하는 저도 정말 행복할 거 같아요."

김사헌(규복역,37,동이면 세산리)

 "안녕하세요. 세산리에서 곤충체험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사헌입니다(웃음). 연극이 처음은 아녜요. 고등학교 때랑 대학교 때 연극 동아리를 했거든요. 근데 그때 동아리원들이 저 때문에 많이 곤란해 했어요. 비극적인 내용의 창작극(제목이 아직도 생각나요. ‘아가야, 꽃 따러 가자’였어요. 전 ‘아가’역이었죠(웃음))이었는데 꼭 제가 나서면 희극이 되는 거예요. 곤란했죠. 그래서 조현미씨가 같이 연극을 하자고 했을 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걸 해도 되나? 결국 하기로 했어요. 그것도 남자주인공 역을 맡았어요. 제가 귀농귀촌인인데, 귀농귀촌인도 지역에 충분히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요. 박효서 선생님께 제가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선생님은 정말 오늘 연극에 초청하고 싶네요."

이은숙씨(사월역,38,옥천읍 죽향리)

"이번 연극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역시 시간조율을 하는 문제죠. 저흰 학생이 아니고 직장이든 자녀일이든 하는 각자 하는 일이 빽빽하게 있으니까요.
그것 외에는 정말 다 좋았어요. 어려서부터 문화예술 활동을 좋아했거든요. 특히 연극은 언젠가 꼭 한 번 해보고 싶었고요. 아쉬운 게 있다면 연극이 12세 이상 관람가라서 제가 무대에 서는 걸 우리 아이들이 보지 못한다는 거? 그거 하나 아쉬워요. 다음에 또 공연할 기회가 어떻게, 없을까요?"

박현희(귀덕역,47,옥천읍 장야리)

"지금은 상하수도 사업소 수도검침 일을 하고 있어요. 연극은... 제가 고등학교 때 연극 동아리를 했거든요. 세월이 벌써 30년쯤 지났네요. 세월이 정말 빨라요. 그런데 열정은 안 식었어요(웃음). 이번 연극에서는 원래 굉장히 똑똑한데, 전쟁 때문에 결국 미쳐버린 귀덕이 역을 맡았어요. 딱 대본을 받자마자, ‘아, 이건 내가 정말 하고 싶다’ 생각이 들었어요. 가장 평범하게 가장 사랑받고 자랄 수 있었던 애가 이렇게 미쳐버린 건, 귀덕이야말로 정말 이 전쟁의 피해자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거든요. 귀덕이의 일상에 정말 참여해보고 싶었어요. 어떤가요. 제 열정 전혀 식지 않았지요(웃음)?"

이현수(대장역,42,옥천읍 문정리)

"임대업을 하면서 갖가지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연극은 예전부터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활동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워낙 문화예술 활동을 좋아했거든요. 혹시 기회가 된다면 이번 공연 말고도 앵콜 공연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한 번만 하기엔 너무 아쉽잖아요. 평소 옥천이 타지역과 비교했을 때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너무 적다고 생각했는데, 사람과 공간만 있다면 가능하다는 걸 저희가 이번에 보여줬잖아요? 이번 일을 계기로 주민들이 문화예술 부문에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더 넓어졌으면 좋겠어요."

이선옥(쌀례네,44,옥천읍 문정리)

"귀덕이(박현희)가 ‘언니 해볼 생각 없어’라고 말해서 같이 하게 됐어요. 제가 상하수도사업소에서 일하거든요(웃음). 공무원인데다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틀에 짜인 것처럼 살고 있다가 귀덕이 제안에 ‘에라, 모르겠다’ 했어요. 그런데 제가 맡은 역 대사에 욕이 좀 있는 거예요. ‘어머, 제가 이걸 어떻게 해요’ 했는데(웃음) 나중에는 연출 선생님한테 ‘욕 좀 더 넣어주시면 안 돼요?’ 했어요(깔깔). 욕 한 마디 하니까 속 답답한 게 한꺼번에 터지더라고요. 전 정말 너무 재밌었어요."

임숙녀(양씨역,57,옥천읍 장야리)

"제가 사실 어려서부터 문학소녀였어요. 공고를 보고 ‘옳다구나’ 했죠. 어려운 건 대사 외우는 일이었어요. 대사가 7장에서 8장 정도 되는 거 있죠(세상에). 게다가 산불은 정통연극이다 보니까 말이 조금이라도 엉키거나 하면 안 되는 거니까, 정말 난감했어요. 그런데 뜻밖에 소득(웃음). 제가 지금 대한노인회 치매예방 강사로 있는데, 대사를 외우다보니까 이게 치매예방에 좋은 거 같더라고요. 어르신들, 보고 계세요? 연극 한 번 도전해보셔요! 저 믿고 한 번 해보세요!"

박보용(최씨역,48,동이면 석탄리)

"제가 저희 마을에서 마당극 흥부놀부전을 했는데 정통연극은 마당극이랑 정말 달라요. 마당극은 애드립이 되는데 정극은 안 그러잖아요. 그게 좀 힘들었는데, 그래도 하다보니 정극의 매력을 알겠어요. 정극만의 잔잔한 감동이 있거든요. 멈출 수가 없더라구요. 내가 잘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할 수 있어요. 동네에서 수다 떠는 것보다 더 좋아요. 읍 사람들과 어울릴 일이 언제 있을까? 했는데, 가족같고 너무 좋아요. 옥천이 더 좋아질 거 같아요."

백광수(사병2,옥천중 3학년)

"엄마(박보용)가 어느날 갑자기 ‘연극해보지 않을래?’ 했어요. 절 위해서 한 말은 아니구요(웃음). 극중에 규복이가 대밭에서 죽는데, 규복이를 대밭에서 들고 무대 위로 끌고 나오려면 남자 배우가 한 명 더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끌려왔죠(웃음). 하면서 제가 어리다고 어려운 건 없었어요. 다른 분들 농담 듣는 것도 웃기고 실수하는 것도 웃기고... 그 과정이 정말 재밌었어요. 앞으로 또 무대에 설 기회가 있을까요? 하고 싶어요."

양혜리(정임역,20,옥천읍 삼청리)

 "부잣집 딸 역이에요(웃음). 이 역할을 설명하기보다 연극을 더 설명하고 싶어요. 제겐 이 연극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거든요. 원래 낯을 좀 가리는 편이었는데, 여기 있으면서 사람을 보는 일이 편해졌어요. 사람 냄새가 나는 연극이에요. 이 분들과 함께라면 앞으로도 또 하고 싶어질 거 같아요."

심현숙(병영댁.44,옥천읍 장야리)

"병영댁이랑 옷감장수 역을 맡았어요. 1인2역이죠. 저도 예전에 동화구연을 했었어서 점례처럼 연출 선생님한테 여러번 혼났어요. 계속, 정말 쉬지 않고 연습했죠. 그래서 휴가도 못갔고... 가족들에게는 미안해요. 그래도 연극이 성취감 하나는 끝내줘서(웃음) 이제는 가족들도 다 기대하고 있어요. 두 달 만에 이 과정을 다 마쳤다니, 저희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앞으로도 이 만남 계속하고 싶어요."

조한(사병1,53,옥천읍 양수리)

"제가 ‘길거리 캐스팅’ 된 주민이에요. 구읍쪽 정자에 친구들이랑 자리 잡고 놀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연극하시는 분들이 먼저 자리 잡고 있더라고요. 언제쯤 일어나나 근처에서 서성거리고 있는데, 제가 연극에 관심 있는 줄 알았나봐요. 전 그냥 친구들과 놀 자리가 필요했을 뿐인데...(웃음). 그래도 역시 행운이었죠 그날은. 뒤늦게 합류돼서 대사는 많지 않았지만 함께 연극을 할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어요. 잊지 못할 거 같아요."

오수민(끝순이역,21,옥천읍 금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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