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성의 심심풀이 말풀이
김주성 한자강사 (옥천읍 문정리)

우리의 둘레에는 그 쓰임이 바뀌거나 변질된 것이 부지기 수다. 그것이 꼭 잘못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 또한 본래의 뜻과는 다르게 이해되거나 쓰여지는 사례는 다반사이다. 

우리 겨레의 정신적 토대를 이루는 것 가운데 하나가 불교이다. 이는 우리나라 불교의 역사가 1600여 년이나 되는 까닭도 있지만, 그 세월 동안 위로는 왕실과 아래로는 기층민중, 그리고 토속신앙까지도 포용하며 겨레의 정서와 세계관에 깊이 자리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세월이 흐르면 변하기 마련,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불교와 관련된 말 중에서 몇 가지를 살펴본다.

무상(無常):  텔레비젼의 사극에서 늙은 스님이 '실로 인생이 무상하구나!'하고 인생의 덧없음을 나타낼 때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리하여 무상이라는 말은 아예 허무, 허망의 뜻으로 굳어가고 있다. 그러나 무상이란 항상함이 없다, 고정됨이 없다란 뜻이다. 세상의 모든 것-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시간이나 의식조차도 변하기 마련이다. 모든 것[色]은 외부와의 반응에 의하여 성장, 발전하고 끝내는 소멸의 과정을 밟는다(色卽是空). '나'라고 하는, 고정불변이라는 절대성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곧 무상이란 허무의 단어가 아니라 사물을 운동으로 파악하고 있는 상대적이고 과학적인 말이다.

다반사(茶飯事):  항다반사(恒茶飯事)의 준말. 

절에서 스님들이 차 마시고 밥 먹는 일이 늘 있는 일이라는 데서 '예사로운 일, 일상 있는 일'이란 뜻으로 변한 것 같다.

이판사판:  막다른 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게 된 판. 

우리 말에는 비슷하게 짝을 지은 낱말이 많다. 옹기종기, 올망졸망, 울긋불긋, 티격태격, 곤드레만드레, 휘뚜루마뚜루 같은 말들로서 별 뜻 없이 운율을 맞추어나간 첩어(疊語)들이 그것이다. 이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뒤에 시작하는 첫음절만이 바뀌어 이루어진 것이다. 이판사판 또한 이런 말의 한 가지로서 그 유래를 불교에서 찾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억불(抑佛)정책으로 특히 후기로 접어들면서 불교는 점점 더 힘을 잃게 된다. 승려는 푸대접 받고 절은 황폐해지는데, 한편으로는 어려움을 딛고 명맥을 이어나간 곳도 있다. 이때 절을 운영하고 여러 가지 절일을 관장하는 승려들은 자연히 공부(참선·강경)할 기회를 잃게 되고 그래서 무식해졌으며, 절일을 젖혀둔 채 공부만 하는 승려들은 학식은 깊어졌지만 세속과는 담을 쌓음으로해서 매사에 소극적으로 되었다. 절일을 운영하던 승려를 사판승(事判僧), 수도(修道)에 전심하는 중을 이판승(理判僧)이라 했다. 어려운 시절 사판승의 공로가 컸음에도 이판승들은 사판승을 업신여겼다(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런 형편이었기에 누군가 출가를 하고자 할 때는 이판이든 사판이든 어느 쪽인가를 가려야 했다. 또한 승려를 생각할 때도 이판인지 사판인지 가려야 했을 것이다. 이판사판 안 가릴 수 없으니까.  

대부분의 책에서는 위처럼 설명하지만 그냥 이번판, 이것, 이승이냐 아니면 죽는판, 저것의 뜻을 담아 이것저것, 사느냐 죽느냐 이런 뜻으로 쓰는 것일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유래가 정말 그런지 나도 잘 모르지만, 어쨌든 이판사판 가리지 않고 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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