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순표(옥천향토전시관 명예관장)

전순표 관장
전순표 관장

[전순표의 역사탐방]

조선시대인 연산군 1년인 1497년에 옥천과 청산에서 지진이 발생하였고 1502년인 연산군 8년 7월에 옥천에 지진 발생과 큰 장마가 졌다. 또 그 해 12월과 다음해 1503년까지 4번에 걸쳐서 옥천에서 여러 번 지진이 발생했다.

이 같은 지진과 홍수로 옥천이나 청산은 연산군의 폭정으로 인한 폐정과 함께 자연재해로 인한 백성들의 걱정, 불안으로 더욱 민심이 흉흉했을 것이다.

조선 중기에는 연산군 때에 이어 옥천과 청산에서 지진이 자주 발생하였고 특히 다음 임금인 중종 재임 때는 5회에 걸쳐 비교적 큰 지진이 자주 발생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중종 12년, 13년인 1517~18년 각각 12월과 중종 17년인 1522년 8월에 소리가 우레와 같은 큰 지진이 일어나서 지붕 기와와 집들이 큰 흔들림이 있었다.

그리고 1523년 5월에도 옥천에서 지진이 보고되었다. 중종 39년인 1544년 2월에는 옥천과 청산을 비롯한 서해안 지역을 제외한 충청권 전 지역과 전라도, 경기, 황해도에 이르기까지 파장이 큰 지진이 발생했다.

1665년(현종 6년) 1월 23일과 24일 충청도 청산 영동에 지진이 났었다. 한편 조선 중기인 1500년 후반부터 1700년 이전까지 100년간 지진 기록이 현종 때 1건 밖에 없는 것은 이 시기에 임진왜란, 인조반정,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3번의 전쟁 등으로 인한 국정과 지방행정 체계, 국토 파괴로 큰 혼란이 있었기에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중후기인  숙종 26년인 1700년 7월에 청산 땅이 갈라지는 현상이 나타났고 다음해인 1701년 12월에도 지진이 발생했다. 그리고 영조 18년인 1742년 11월에도 옥천에서 지진이 일어났고 전염병까지 창궐하여 죽은 백성이 많았다. 영조 20년인 1744년 9월 2일에도 공홍도 청산현에 지진이 있었다고 조선왕조실록은 기록하였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조선시대 옥천군내에서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했다. 이런 연유로 옥천지역에서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지진에 대비하여 평소 지진발생 시 대피요령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지진이 발생하면 기상청에서 지진 경보나 긴급 재난문자를 휴대폰에 발송한다.

지진에는 크게 지진의 세기에 따라 크게 두 종류로 진도가 5를 넘으면 방에서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고 진도 7.0 이상의 강진의 경우는 상하로 지층이 흔들리며 아주 커다란 피해가 났다. 

일본 고베지진의 경우 7.0의 강진이 발생하여 지옥을 방불케 하는 엄청난 규모의 지진으로 고베 항 방파제가 다 무너지고 대형 크레인이 쓰러지고 15층 아파트가 꺽여 앞으로 부러지고 화재가 곳곳에 발생하며 큰 피해를 낸다. 

지진이 발생 하면 탁자 아래로 피하기, 전기와 가스 차단하기, 운동장이나 공터로 대피하기, 아파트는 계단을 이용하여 속히 대피하는 등 지진행동 요령을 알아야 하겠다. 또 우리 동네 지진대피소 정도는 파악해 두는 것도 좀 더 우리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옥천읍 삼양리 마을의 경우 지진 발생 시 대피소는 옥천중학교운동장이며 문정리 하늘빛아파트나 문정주공아파트 주민은 공설운동장이 지진대피소이다.

근래에 옥천 주변에서 일어난 지진과 경주, 포항 지진을 계기로 지진에 대한 국민들의 경각심이 높아지고 건축물의 경우 내진설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옥천군내의 각 학교는 지진대비소 마련과 지진발생시 대피요령을 교육시키고 체험하도록 지진대피 연습을 시행하고 있다. 장계관광지 광장에 지난해 여름에 지진을 감지할 수 있는 기기를 설치했다. 유비무한이다. 자주 여름과 초가을에 일어나는 태풍과 집중폭우에 대비하여 미리 미리 점검하고 대비함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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