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행복한 학교 9학년 개나리 반 김성남!

 

느지막이 물리가 트였어. 학교 다니면서 글을 배운 덕이지. 글자가 하나 둘 보이더니 세상이 환해졌네. 그 날이 그 날 같더니 어제도 다르고 오늘도 새 날이야. 고맙지 고맙고 말구. 인생에 계절이 있다면 우리 나이는 겨울이야. 다행인건 꽁꽁 언 겨울이 아닌 장독대에 함박눈 소복이 쌓인 겨울. 마당 한 편 주목나무에 눈 꽃 예쁘게 내려앉은 겨울. 겨울인데 따뜻하고 예쁘지?

구십을 넘겨보니 가슴이 뛸 만큼 재미가 넘치거나 흥미를 돋우는 것도 더 이상은 없어. 그래서 그 날이 그날같이 똑같은 하루 일 것 같지? 근데 신통하게도 아니여, 오늘은 어제와도 다르고 그제와도 다른 대단한 선물인 것이여.

생명은 때론 참으로 질기고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긴 하지만 하찮고 별 것 아닌 일에도 까딱하는 순간에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걸 살면서 많이 겪었지. 허망하고 약하디 약한 것이 인간의 생명일 수도 있어. 이제 내가 올해 구십 한 살이라 고운 죽음을 맞는 생각도 간간이 하면서 살게 돼.

봄은 시절이 화창하니 녹음방초 우거지면 저마다 앞 다투어 피는 꽃들도 한결 빛이 나지. 오월의 선선한 바람, 유월의 달짝지근한 바람타고 작은 새들이 종알종알 지저귀고 말여. 칠팔 월의 후덥지근한 더위, 한바탕 쏟아지는 소나기에 마음이 후련해지지. 그리고 곧 가을이 오고 열매를 수확하는 기쁨이 있지. 지난날 기나긴 겨울 동안 사랑방에서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길쌈을 하고 짚신을 짜다가 시원한 홍시를 꺼내어 먹고 이가 시리도록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정신이 번쩍 들었지. 내 인생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는구먼. 나는 이제 죽음이 두렵지 않도록 당당하고 평온하게 맞이하려는 소망만 있어.

아흔 한 살 지금 인생의 끝자락인 겨울에 와 있어. 옛날처럼 엄동설한 배곯거나 얼어 죽을까 두려웠던 북풍한설 몰아치는 겨울이 아니지. 나에게 죽음이 멀리 있지 않은 건 사실이잖아. 지금 돈이나 금붙이보다 귀한 것이 있다면 나의 편안하고 즐거운 오늘이 더 값진 것이제.

행복한 학교에 화요일 금요일 두 번 출석하고 있는 게 내 즐거움의 팔 할은 될걸. 나는 처음부터 학교에 나오지는 않았어. 동네에서 학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알았지. 그래서 중간에 입학하게 된 거여. 와서 뭘 특별히 더 배울 것도 없지만 여럿이 모여 노는 재미이지. 그저 학급 친구들도 만나고, 달달한 커피도 한잔 씩 타 먹고 말이여. 더하기 빼기도 배우고, 체조도 다 같이 하고, 노래도 부르고 말이여.

지난번 음악시간에는 독도는 우리 땅을 배우면서 다 같이 불렀지. , 그 일본 놈들이 참으로 못됐어. 옥천에서 왜정시대(일제 강점기)때나 전쟁 통은 그리 심하게 겪지 않아서 다행이긴 했지. 수업시간에 듣자니 우리나라 처자들을 강제로 끌고 가서 일본 놈들에게 몸을 팔게 만들었다면서... 여적 지대로 보상도 안 해주고 말여. 그리고 독도가 왜 즈그네 땅이여? 우리 땅이지. 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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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원면 의평리에서 태어났어. 6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는데 날씬하고 자그마해서 예쁘다는 소리 줄곧 들었어. 양쪽 집안을 잘 아는 친척의 중매로 안내면 태생인 동갑내기에게 시집와서 56년간이나 같이 살았네. 시어머니와 시누이 그리고 신랑뿐인 단출한 집으로 시집와서 아들 셋, 딸 둘 모다 5남매를 낳아서 키웠어. 남편과 나는 열심히 살았지. 우린 땅이 별로 없었어. 밭농사 논농사 담배농사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열심히 지었지. 자식들을 가르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농사로는 돈 벌이가 시원찮아서 곰곰이 생각한끝에 다른 방도를 찾았어. 어차피 땅도 별로 없고 소출도 변변찮고 해서 5남매를 가르치려면 점차로 한없이 더 버거워질 것 같았어. 그래서 농사는 전적으로 신랑에게 맡기고 나는 장사를 한번 해봐야겠다고 큰 맘 먹었지.

여름-

친정 여동생이 이원에서 살고 있었는데 이원 장에서 만난 장사꾼에게 단골로 물건을 사다 친한 언니동생 사이가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어. 그래서 나는 친정동생에게 그 장사꾼을 소개해 달라고 해서 이원 장날 만나서 돈을 벌고 싶으니 장사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했어. 담배농사 고추농사해서 모은 그때 돈으로 3500원을 장만해서 장사밑천으로 썼어. 손이 발발 떨리데 그 돈이 예사 돈이 아니잖아. 처음이라 우선 잡화 장사부터 시작했어. 대전역에 있는 중앙시장으로 나가서 실 바늘 비누 소쿠리 등등을 떼어다가 집집마다 다니면서 방문판매를 시작했더랬지. 쪼매난 여자가 쑥스러워 모기만한 소리로 물건을 사라하니 파는 나도 어설프고 물건을 사주는 사람도 신기했어. 일곱 살짜리 딸을 떼어놓고 장사하러 다니면 지언니가 데리고 다니며 돌봤지. 애들도 고생했지. 나중에는 옷도 떼다가 팔았는데 5일에 한 번 안내장에 가서 물건을 팔게 되었지. 남편이 구루마로 물건을 옮겨주면 펼쳐놓고 팔았는데 나중엔 단골도 생겨났어. 시장에서 전을 펼칠 배짱이 어디서 났겠어? 자식들이지. 새끼들이 고단하게도 하지만 힘도 주는 거야.

가을-

농사도 짓고 장사도 하면서 자식들 가르쳤으니 자수성가했다고 해야겄제. 장사로 이문은 별 재미 못 봤지만 자식농사는 잘 지었지. 내 장사 덕분에 애들 가르치면서 이웃으로 돈 꾸러 안 다녔어. 자존심은 지키고 살았던 거야. 차츰차츰 돈도 모이고 땅도 많이 장만하였제. 큰아들과 막내아들은 대전에다 하숙까지 시키면서 대학까지 가르쳤지. 큰아들은 제조창 다니면서 정년퇴직했고, 막내아들은 중학교 교장이야. 교장 아들과 옥천시내에서 부동산하는 며늘아이가 매주 와서 나랑 시간을 보내지. 아들을 교장까지 만들었으니 이만하면 됐지. 한창 벌어먹고 사느라 몸과 마음이 바쁘고 지칠 때 친정 남동생이 성당에 다니자고 해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성당에 다녀. 우리 옥천에는 아주 오래된 유명한 성당이 두 군데나 있어.

눈꽃 핀 화사한 겨울-

일주일에 두 번 행복한 학교에 나오는 것과 일요일 성당에 한 번 나가는 게 내 가장 중요한 일과이고 낙이지. 내 또래는 다 먼저 떠났고 젊은이들은 일하느라 바빠서 말 섞을 기회도 없지. 그저 하루하루 내 주변 정갈하게 치우고, 욕심 없이 살며 마음을 닦고, 모든 사람 다 잘되라고 기도하지. 나 세상 떠날 때 수월하게 작별하도록 해달라고 기도해.

고요 속에서 마주한 내 인생이 축복 그 한 가지이었음에 감사드리니.

이연자 작가
이연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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