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부터 압화공예 시작해 22년차
길고 힘든 과정, 함께 할 사람 없어 서운
한지공예, 가구 등 끝없는 응용 중

 98년도였다. 대전에 살다가 시골이 좋아 옥천으로 찾아온 게. 남들이 밭에 푸성귀를 심을 때, 왠지 그러기가 싫더라. 초가집이라고 방송도 타고, 사람들이 오가며 차도 마시고 해서인지, 꽃을 심고 싶었다. 무슨 열정이 어디서 났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전국 방방곡곡으로 꽃을 사러 다녔다. 그렇게 흐른 시간이 20년을 넘었다. 하다 보니 멀리까지 왔다. 흘러간 시간을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보여질 때가 있더라고요.”

 이미자(71, 동이면 매화리) 옥천예총 미술협회장은 압화 공예 작가다. 해온 시간이 있어서인지, 분야의 특성인지, 압화를 시작하고부터 있었던 일화가 하고많다. 코스모스를 따다가 신고를 받고 파출소에 가 조사를 받은 적도 두어 번 있고, 벚꽃을 따다가 넘어지고 구르기도 수없이 했다. 꽃을 누를 때 쓰는 매트를 말리다가 집에 불도 낼 뻔했다. ‘힘들었던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이야기하는 지금에는 웃음꽃이 만발한다.

2013 제12회 대한민국압화대전 대상을 수상한 작품.
2013 제12회 대한민국압화대전 대상을 수상한 작품.

 사실 압화라는 공예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 힘든 일이라고, 정말 힘들겠다고 인터뷰 중에만 다섯 번 넘게 얘기가 오갔을 정도다. 차라리 그림을 그리려면 밑그림을 그려두고 위에 색감을 올리면 된다. 내 재주만 있으면 자유자재다. 하다가 쉬어도 되고, 일주일 넘게 붙들고 그려도 괜찮다. 압화는 말하자면,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아주 길게 잡은 뒤에 그것을 속성으로 해내는 것 같다. 그림에 비유하면 물감, 붓 등의 여러 도구들을 직접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도구의 재료도 직접 구해야 한다.

 영감이 생기면 디자인을 한다. 여기에 어느 꽃, 어느 풀이 들어갈지 결정하고, 그 꽃을 구하러 간다. “지금에나 이렇게 꽃이 많지, 20년 전에는 꽃이 이렇게 많지가 않았어요. 꽃을 구하려면 정말로 전국을 다 다녀야 해. 방방곡곡 안 다닌 곳이 없어요.” 꽃을 다듬고 누르고 말리고, 이때 색감을 유지하는 것이 포인트. 하지만 꽃을 아무리 잘 말려도, 시간이 지나면 색이 변하고 습기를 머금는다. 그러면 쓸 수가 없다. 일단 시작했다 하면 3~4일 내로 작업을 마쳐야 한다고.

한국미술협회에서 특선을 받은 작품.
한국미술협회에서 특선을 받은 작품.

 

 이게 앞부분만 간단하게 표현한 과정이다(!). 진공처리, 방부, 습기제거, 하나하나 말하면 끝이 없다. 그러니 힘들다. 그러니 사람들이 잘 하려고 들지 않는다고. “옥천에 제자를 하나 제대로 못 키운 게 참 아쉽고 서운해요. 평생학습원 처음 개강하던 때부터 3년을 강의했는데, 다들 오래 하질 않더라구요. 시간도 많이 들고, 일도 너무 많고, 꽃을 3~40만원 단위로 사니 돈도 많이 들고. 힘든 걸 내가 아니까 같이 하자 소리도 못 하고. 예쁘고 쉬운 것은 많이들 찾는데, 정말 힘든 과정을 지나지 못하더라고요.” 우스갯소리로 ‘옥천에 성공한 사람이 이미자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냥 웃지는 못하고, 약간 씁쓰름하다.

이미자 협회장이 보내준 작품활동 중인 사진이다.
이미자 협회장이 보내준 작품활동 중인 사진이다.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든 걸 내가 하고 있나’ 하고 생각해본다.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원래 꽃을 좋아했는지, 직성이랑 맞았는지. 스승도 하나 없이 시작하면서 4~50개를 내리 만들었다. 밥을 굶어도 꽃은 샀다. 자동차 기름은 못 넣어도 꽃은 사야 했다. 그 정도 마음이 아니었으면 못 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참 대단해. 그렇게 할 수가 있나? 지금 생각하면 못 할 것 같애. 스스로도 기특해요.” 하지만 “차라리 집을 팔지(!), 만들어놓은 것 팔아서 더 할 생각은 없다”고 말하는 지금 생각도 대단하게만 보인다.

 많은 작품을 해왔지만 그래도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맨 처음 만들었던 작품이다. “못 한 작품이죠. 뒤로 갈수록 기교가 들어갔달까, 지금은 뭐가 이리 많고 해도 그때 그 느낌이 나질 않아요. 가만히 보면 그게 또 참 예쁘거든. 초등학생들 그림을 보면 아주 예쁘잖아요. 그것처럼, 지금도 그게 좋고 와닿아. 지금은 그게 안 돼요. 그게 아직도 집에 있어요. 잘했든 못했든 기특하지요. 영감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기자의 개인적 소견으로 가장 마음에 닿은 작품이다. 제목은 '별밤'.
기자의 개인적 소견으로 가장 마음에 닿은 작품이다. 제목은 '별밤'.
한지공예를 응용해 압화로 꾸민 가구.
한지공예를 응용해 압화로 꾸민 가구 작품.

 압화는 참 힘들지만, 힘든 만큼 한계도 없다. 생각과 디자인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참 많다. 액세서리, 가구, 유리, 조그마한 소품들도 문제없다. 가구 작품은 모두 설계를 하는 남편이 만들어 준 가구에 한지를 붙이고 옻을 올려 만든 것이다. 한지공예도 배워 응용했다. 자꾸 응용을 하고 변화해야 작품이 성장하는 거라고 말한다. 하나하나 만들어두면, 그 마음이 참 흡족하다고.

 2010년 첫 전시를 시작으로 수없이 많은 전시와 대회 입상.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미술협회장이 되기까지. 겉으로 바라보기에는 그저 예쁜 꽃길이지만, 꽃으로 덮인 아래 캔버스에는 힘든 시간이 녹아들어 있다. 꽃을 가득 덮어 이제는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들. “그런 과정이 지나면 또 세월이 가겠죠.” 이미자 협회장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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