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온 인턴 기자의 옥천읍-가풍리행 시내버스 탑승기
매일 오전 병원 가기 위해 읍내 버스 이용하는 어르신들 多
문맹인 어르신들과 버스 기사 모두 편한 버스 운영 방법 모색 필요

필자가 탑승한 옥천-가풍리행 시내버스.
필자가 탑승한 옥천-가풍리행 시내버스.

 

821일 오전 10시에 출발한다는 버스에 무작정 탔다. 옥천 읍내 종점에서 출발하여 마암리-대천리-삼청리-소정리-가풍리까지 갔다가 읍내로 돌아오는 버스였다. 버스 번호 따라 노선도가 붙어 있는 서울의 버스 정류장과 달리 옥천 버스 정류장에는 버스노선시간표가 붙어있었다. 오전 6시 반 전후로 첫차가 있다. 막차는 오후 7시 반 전후로 도시와 비교하면 매우 이르다. 이미 서너분의 어르신들과 청년 한 명이 버스에 타고 있었다. 어머니들께 어디 가시느냐 여쭈었더니 모두 병원에 갔다가 댁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매일 버스 타고 병원 다녀. 중앙의원 갔다가 대천리 돌아가. 돌아다니기 힘들어. 일은 못하겠어. 동네가 50가구뿐이 없어서 병원이 생기긴 힘들지. 그래도 읍 나오면 가기 힘든 병원은 없어대천리 주민 이정자씨의 말씀이다.

 

병원에 다녀 가는 길, 이웃 주민들과 정겹게 대화하고 있는 어르신들의 모습.
병원에 다녀 가는 길, 이웃 주민들과 정겹게 대화하고 있는 어르신들의 모습.

 

비록 병원에 가는 길이지만 시내버스 안에서 승객들은 오며 가며 이웃 주민들 안부를 확인하기도 하고 바람을 쐬기도 한다. 옥천 토박이 곽정재(86)씨는 물리치료를 받으러 매일 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간다.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니 운동 겸 왔다 갔다 하신다고. 한 때 대전까지 나가 일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소소하게 농사를 지으며 아내와 함께 살고 계시다는 곽정재씨는 옥천에서 지내며 가장 좋은 점으로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꼽았다. “노인정 가면 친구들 만나서 같이 노는 게 재밌지.” 역시 삶에서 사람이 중요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대목이다. 버스 안에서 인사를 주고받고, 일과를 묻는 승객들의 모습에서, 굳이 묻지 않아도 옥천 버스는 옥천 주민들의 만남의 장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울 버스에서는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려운 일인데, 이곳 옥천버스 안에서는 아는 사람을 안 만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운동 겸 바람쐴 겸 매일 버스를 타신다는 곽정재(86)씨.
운동 겸 바람쐴 겸 매일 버스를 타신다는 곽정재(86)씨.

 

한 청년이 버스에 올랐다. 호기심에 말을 붙였다. 그는 가풍리에 거주 중인 박나리(23)씨로, 남자친구를 만나러 읍내에 나가는 길이었다. 읍내에서 남자친구를 만나, 기차를 타고 대전까지 가야 데이트를 할 거리들이 있다. 주로 대전에서 영화를 보거나 커피를 마시곤 하는데, 오늘은 옷을 쇼핑할 계획이라고 한다. 시내버스 운행으로 편리한 점에 대해 물었더니,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것보다 시내에 사는 게 제일 좋죠라고 말한다. 교동 식품에 근무 중인 나리씨는 출근을 할 때에도, 오늘처럼 데이트를 할 때에도 버스 시간표에 맞춰 외출하고 귀가해야 해서 생활에 제약이 많다고 한다. 기회가 된다면 도시로 나가도 좋을 것 같은데 함께 살고 있는 부모님 생각 때문에 옥천을 떠나지 못한다. 밖에 나가지 못하는 밤에는 주로 쉬거나, 자격증을 알아보거나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분 저분 여러 분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버스는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옥천읍 종점에 도착했다. 멋진 운전을 보여준 버스기사 최정봉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승객들이 버스를 이용하는지, 주로 누가 이용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노선과 시간에 따라 다르지만 체감 상 250명 정도가 옥천버스를 이용하는 것 같으며, 학생 빼고는 젊은 사람이 적다고 답했다.

정봉씨는 이용객 중 80%가 문맹이라고 했다. “기본 에티켓을 지켜줬으면 좋겠어요. 흔한 일은 아니지만 버스 안에서 (노인들이) 실례를 하는 일도 있고. (글을 모르다 보니)이것보다 매일같이 이거 어디 가느냐’ ‘여기 정류장 어디냐같은 질문들에 대답해줘야 해. 매번 알려줘도 다음날이면 또 물어보니.대답을 안 해주면 불친절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매일 대답해주지. 어르신들이니 이해해야지.”라며 애로사항을 토로하기도 했다. 군에서 버스 예절 교육을 진행했으면 하는 의견도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버스에는 노선 소개가 되어있지 않고, 정류장 소개는 음성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버스 주 이용객은 글을 읽을 수 없거나, 소리가 잘 안 들리는 어르신들이다. 어르신 승객과 버스 기사 모두 편할 수 있는 버스 운영 방법이 없을지 모색이 필요해 보인다.

카메라를 발견하고 브이를 그려주는 유쾌한 버스 기사님들.
카메라를 발견하고 브이를 그려주는 유쾌한 버스 기사님들.

 

서울의 버스들은 10분 내외의 간격으로 정류장에 온다. 출퇴근시간이면 버스에는 승객들로 꽉 차 자리에 앉을 수 없음은 물론이고 살을 맞닿은 채 서서 이동해야 한다. 대부분은 다크서클이 내려 온 눈으로 핸드폰을 내려다보고 있다. 서울 버스 안에서의 시간은 무미건조하고 피곤하다. 도시에서 버스는 목적지에 빨리 데려다 줘야 하는 수단일 뿐이다. 이에 비해 시골 버스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닌 지역 공동체의 일부로 느껴졌다. 사람 냄새가 나기 때문일 것이다. 만나는 사람과 인사하는 승객들, 탑승 후 자리에 앉을 때까지 멈춰서 기다려주는 버스, 그리고 창밖의 한적한 농촌 풍경까지. 괜히 정겨운 시내버스 탐방이었다.

 

버스 밖으로 보이는 녹색 풍경
버스 밖으로 보이는 녹색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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