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이 찾아오면 길거리 별미의 선봉장인 붕어빵과 더불어 방금 튀긴 ‘강냉이’와 ‘튀밥’도 겨울을 대표하는 간식이다. 어릴 적 할머니의 뒤를 졸졸 따라 장을 구경하고 키보다도 더 큰 강냉이 봉지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면 방 안에서 하루 온종일 입으로 털어 넣던 강냉이의 맛. “이게 무슨 맛이야?”, “아무 맛도 안 나는 맹맛인데?”라면서도 어느새인가 입안 한가득 물고 있는 강냉이와 튀밥은 추운 겨울을 따듯하게 보듬는 추억이 된다.저 멀리서부터 다급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혹여나 뻥튀기 소리에 놀라는 일이 없도록 미리 예고를 하
멀리서부터 성큼성큼 다가오던 겨울이 이제는 추운 바람을 한아름 이끌어 켜켜이 쌓인 옷깃을 파고든다. 거세게 불어닥치는 한기가 참으로 매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만이 가지고 있는 ‘따뜻함’ 때문인지, 혹은 ‘포근함’ 때문인지 우리는 종종 춥디추운 겨울의 매서움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날이 추워지면 길가에는 ‘별미’들이 등장한다. 길거리서 한두 개씩 사 먹던 ‘붕어빵’, 갓 튀겨진 ‘강냉이’ 한 줌과 따듯한 어묵 한 꼬치는 겨울철이면 생각나는 최고의 별미요, 겨울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
유난히 이번 연도는 빨랐다. 벚꽃이 100년 만에 가장 빨리 피었고, 첫눈도 작년보다 한 달 빠르게 왔다. 지구에 살아가는 옥천고등학교 3학년 이봄이(19, 읍 마암리)씨는 이번 연도를 보내며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다.“지구온난화가 심한 건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게 더 심각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10월인데도 여름처럼 덥더니 갑자기 11월에는 한파가 찾아오고 첫눈이 내렸다. 그는 100년 안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기사를 봤다.누군가는 50년 안에 멸망한다고 말했고, 어떤 이는 이미 늦어버렸다고 한다. 어느 순간 기후위기가 북극곰이
이원면 칠방리에 위치한 평범해 보이는 가정집 한 채. 집 근처로 다가가자 개 두 마리가 매섭게 짖어댄다. 집 왼편에는 나지막한 공방이 보이고, 나무 팻말에는 ‘와일드터키’라고 적혀있다. 그곳에서 미색 모자를 쓰고 감색 앞치마를 두른 목공방 와일드터키 대표 전학승 씨(56)를 만났다. 그는 이제 옥천에 내려온 지 10년이 다 된 어엿한 옥천인이지만, 사실 그전까진 서울에서 태어나 45년 동안 수도권에서만 산 도시 사람이었다. 초·중·고를 모두 서울에서 졸업하고 경기도 성남의 대유공업전문대학교(현 동서울대학교)에서 전자계산을 전공했다.
■ 난춘(暖春)젊은 날부터 옷이 참 좋았다. 크게 보면 ‘멋’이라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누구나 그렇듯 젊은 시절은 참으로 힘들게 살았다. 그래서 그런지 ‘멋’을 부리며 사는 것에 대한 동경이 유난히 컸는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에 처음으로 본 빠알간 잠바가 어찌 그리 곱던지… 아마 그것이 ‘멋’을 동경하기 시작한 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뜻과는 다르게 먹고사는 것이 급한 탓에 젊을 적에는 하고 싶은 것들은 가슴 깊이 꾹꾹 눌러 담으며 살았다. 그러니 흐르는 세월이 야속할 따름이다. 그간의 세월을 뒤돌아 보니 꽃이 피고 지듯, 젊은
“취미요? 딱히 그런 거 없어요. 삘 꽂힐 때마다 아무거나 하고 있어요” 퍼즐 맞추기, 뜨개질, 펀치니들, 보석십자수, 비즈공예 등 손으로 하는 취미를 좋아하는 충북산과고 3학년 남인숙(19, 읍 금구리)씨를 만났다. 그는 800개 조각 퍼즐을 3, 4일 만에 완성하기도 하며, 뜨개질로 자신의 목도리를 뜨기도 한다. 빠른 손놀림이 대단하다는 말에 그는 별것 아니라며 겸손하기 바빴다.손으로 하는 취미의 장점이 뭐냐는 물음에 단번에 잡생각이 사라진다고 대답했다. 학업과 취업에서 받는 고민, 여러 가지 관계 속에서 오는 자잘한 생각들은
11월18일에 실시된 수능이 끝나고 여유를 즐기는 옥천고등학교 3학년 박채은(19, 읍 문정리)씨를 만났다. 옥천고등학교 재학시절 학생회장으로 활동했던 그는 졸업을 앞두고 싱숭생숭한 감정과 새로운 사회를 만나러 가는 설렘을 가득 안고 있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 차가운 비를 뚫고 만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해주세요.안녕하세요. 옥천읍 문정리에 사는 옥천고등학교 3학년 박채은입니다. 수능도 면접도 다 끝나서 대학 합격 발표만 기다리고 있어요. 수능이 끝난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수다 떨고 집에 와
슈퍼를 운영한지 올해로 28년. 누구에게나 어려움이 있듯 시작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사실 가게는 문옥금(67,군서면 상지리)씨를 위해 시작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당시 “이 농촌에 누가 시집을 오겠어?”라는 생각으로 시동생에게 가게라도 하나 쥐여주고자 84년에 시작된 것이 ‘서화상회’였고 지금에 와서 ‘서화슈퍼’가 된 것이다. 가게의 이름을 그리 지은 까닭은 군서가 오래전에는 ‘서화’라고 불렸기 때문에 가게의 이름을 그리 지었다고. 옛날에는 사람도 많았다. 그때 그 시절에는 읍에도 큰 마트가 없었기 때문에 필요한 물건이 있
남자 둘이 영화를 틀어 놓고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그 안쪽 작은 방에서는 다른 남자가 낮잠을 자고 있는 듯 했다. 이곳을 찾는 단골손님들도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 이상이 태반이다. 평화로운 오후, 늘 그래왔듯 오늘도 어제처럼 이 곳에 모여 이야기도 나누고 휴식도 취한다. ■ “이곳은 우리의 마실터입니다”자신들을 ‘고 서방’과 ‘은아 아빠’라고 소개한 이들은 이 가게 최고 단골들이다. 그리고 가게 사장인 전태형(56,청성면 산계리)씨와 오랜 친구이기도 했다. 사장은 “나보다 고서방이 우리 엄마랑 더 친해요”라며 허허 웃었다
10살도 되지 않았을 적 자주 갔던, 전라북도 순창 금과면의 한 구멍가게가 기억 난다. 너무 조용해서 새 지저귀는 소리마저 크게 들리던 동네, 할머니 동네에 있던 그 가게를 나와 동생은 어른들 말을 따라 ‘구판장’이라 불렀다. 대형마트에 익숙해져 있던 탓에 살만한 것들이 별로 없을 걸 알았지만, 동생과 꼭 한번씩 들러서 무엇을 살 지 고민했다. 할머니 집은 지루하지만 구판장에 갈 때는 재밌었다. 가게 안 쪽 방에서는 동네 할아버지들이 막걸리를 마시고, 가끔 가게 앞에서 윷놀이 판도 벌어졌다. 그 작은 구멍가게에서 뿜어지던 소음이 좋
올해 2월 동이면사무소로 귀농신청을 하러 갔던 김부규씨는 금암리에 축사를 지어 소를 키우고 있었다. “군에도 가고 면에도 가보고 다 가봤는데 허가를 내는 과정이 꽤나 복잡했다”며 그때의 심정을 토로했다. 허나, 면사무소에서 만났던 채송희 담당자가 너무 친절했다며 “서울에서 살다가 시골에 와가지고 어떤 절차를 거쳐야하는지 잘 모르는데 이 직원이 세밀하게 잘 알려주더라”고 전했다.동이면 지양리가 고향인 김씨는 서울대학병원에서 약 37년간 근무를 했었다. 퇴직하고 나서 소를 키우는 것이 꿈이었다는 그는 서울 생활을 하면서도 조금씩 소를
“우리야 나이 들어서 할 게 뭐가 있겠어? 이렇게 낚시나 다니는 거지. 그러다가 좋은 일 한 번 해보고 싶더라고.”이재규(86,옥천읍 죽향리)씨와 최인호(옥천읍 가화리)씨는 올해로 20년 지기다. 그리고 둘 다 옥천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두 사람은 낚시를 워낙 좋아하던 탓에 옥천에서는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라고. 이곳저것을 돌아다니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볕이 잘 드는 자리를 찾다가 굽은 길을 타고 교동방죽까지 올라왔단다. 이미 3년 전에 바닥을 다 긁어내고 청소를 한 탓에 물고기가 잡히기는 하려나 하는 와중에 “이리 와서
한 달에 몇 번은 “아 이번주는 망했다”라고 생각하는 날이 있다. 아마 누구든 그런 날이 있으리라. 글은 글대로 안 써지고, 취재는 취재대로 안 되는 그런 날 말이다. 아마 콘텐츠를 구상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생각이지 않을까? 수첩과 펜을 집고 카메라를 든 지 7개월. 여전히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당황스럽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전화를 해도 거부를 당할 때가 있고, 또 어떤 날은 전화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에 길을 지나가다 곧장 머리부터 집어넣고 “혹시 취재가 가능할까요?”라고 물어보면 “그런 거 안 합니다”라며 퇴짜를
옥·덕·후 (옥: 옥천 덕: 덕후는 후 :who(누구)?)길을 걷다 우연히 아이돌 ‘에스파’의 로고가 새겨진 후드티를 입고 있는 옥천중 2학년 고영철(15, 읍 마암리)씨를 만났다. 그는 자신을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에스파의 팬 ‘마이’라고 소개했다. 지금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MD를 입으며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지만, 예전에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아이돌을 왜 좋아해? 사람도 저렇게 많은데 이름은 어떻게 외우고, 응원법 같은 건 왜 하는 거야? 아이돌을 좋아하지 않을 땐 무언가를 좋아하는 ‘덕
사진찍기는 찰나의 순간을 담는 것이다. 찰나를 담기 위해서 가던 길을 멈추고, 이리저리 구도를 맞추고 오랜 시간 기다리며 사진에 몰입한다. 길에서 만난 충북산업과학고등학교 3학년 이수현(19, 읍 구일리)씨는 취미가 어떻게 되냐는 물음에 “여러 취미를 가지고 있는데 사진찍기를 좋아한다”며 자랑스럽게 대답했다.자신이 찍은 옥천 풍경들을 보여주면서 “생각보다 옥천에 예쁜 곳이 많다”며 사진에 관해 하나씩 설명해주었다. “여기는 공설운동장 쪽이에요. 노을이 지는게 너무 예뻐서 찍었어요.” 그는 하늘 찍는 것을 좋아한다. 해가 뜨기 직전과
“대전에서 장애인과 그 부모를 대상으로 8회에 걸쳐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다 같이 울고 웃으며 서로의 마음을 헤아렸던 기억이 나요. 옥천에서는 대상자들만 있어서 장난도 치고 비교적 가볍게 진행하지만, 가족들이 오시면 아무래도 조금 더 진지해지죠.”노인장애인복지관(이하 복지관)에서 지난 8일부터 성인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그림책플라워테라피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김자옥(50) 강사를 만났다. 김 강사의 수업에 참여하는 수강생들은 그림책을 읽고 꽃을 다듬으며 마음을 치유한다. “약이나 처방전을 주는 ‘치료’는 아니에요. 대신 책을
“3차 개정위원회에서 탈색과 염색 허용, 귀에 걸 수 있는 액세서리 허용, 교복 대신 무채색의 옷을 입을 수 있는 안건을 다룰 예정이고, 가능하면 학생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학칙이 개정됩니다.”영동중학교는 옥천의 여느 중학교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휴대폰은 점심 시간에도 허용하고 교복을 안 입어도 된다니, 그리고 탈색과 염색이 허용되고 웬만한 액세서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옥천에서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영동은 학생들의 힘으로 하고 있었다. 학교생활규칙위원회에 학생이 과반수로 참여해 거기서 논의를 이끌고 있었다. 그
군서면 상중리가 고향인 김대수 출향인은 중소기업벤처부의 산증인이다. 1989년 중기부 전신인 공업진흥청에서 첫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중소기업청에서 중소기업벤처부로 승격하기까지 30년 이상을 같은 자리에서 중소기업 정책을 다뤘다. 지금은 중소기업벤처부 창업벤처혁신실 기술보호과에서 서기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옥천은 대전과 인접한 농촌지역이고, 중견기업인 국제종합기계(주)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중소기업이다. 지역에 있는 중소기업 수는 650개가 넘지만, 매년 어려워지는 경기에 허덕이는 게 현실이다. 친인척이 살고 있는 고향 옥천을
‘그래, 나 빠순이(빠돌이)다!’, ‘빠순이(빠돌이) 발로 차지 마라!’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책 에서 아이돌 팬덤 공동체를 긍정했다. 철없는 사람들이 연예인을 쫓아다니고, 돈을 쏟아붓는 다며 아이돌 팬클럽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 주류 시각과 다르다. 무엇 때문인가? ‘중요한 것은 스타가 아니라 모여 있는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돌은 매개체일 뿐, 팬덤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팬들 간의 소통이 더 중요하다는 게 강준만 교수 생각이다. 공동체가 형성되고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할 수
옥·덕·후 (옥: 옥천 덕: 덕후는 후 :who(누구)?)과거에는 애니메이션 보는 사람을 다른 취미를 가진 사람과 다르게 어두운 방 안에서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는 사회 부적응자로 묘사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애니메이션을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들이 자신의 취미를 더는 숨기지 않게 됨으로써 애니메이션은 부정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여느 때처럼 평범한 오후, 옥천여중 3학년 박지우(16, 읍 삼청리)씨는 청소년기자 김가람(16, 읍 죽향리)씨를 따라 옥천신문 사무실 '오카이브'에 놀러 왔다. 인턴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