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 가더라도 기본은 지키고 싶었다. 바닥에 디딤돌만은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손잡고 함께 걸어가고 싶었다. 이 동네에 사는 할머니 한 분이 있다. 할아버지는 아흔하나, 할머니는 여든다섯, 두 분 다 장애 등급 판정을 받았다. 땡볕에도, 비 내리는 날에도, 주말에도 폐지 주우러 나오신다. 할머니와 가까워지면서 말을 붙였다. ‘비도 오는데 비 맞고 그랴, 주말에 쉬어야지.’ 할머니 말씀하시길. ‘아녀, 시원해서 좋아.’어느 날 사무실 앞에 빗물이 내려가는 하수구가 막혀 흙을 빼내고 있었다. 지나가던 그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주고 싶었다. 피아노가 평생 가는 친구처럼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음악의 재미를 느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어릴 때 피아노 학원에 다녔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 아이들도 유년 시절의 기억을 평생 간직하지 않을까. 나중에 커서도 잊지 못할 시기를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온다.아현 샘과 피아노 배울 때가 좋았지, 행복했지. 좋은 시간으로 남길 바랄 뿐이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이 집에서 얼마나 소중한 자녀들인지 잘 알기에 더더욱. 피아노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자 친구가 되고 싶었다. 틈
자식이 말려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옛말이 있다. 반대로 부모 입장도 마찬가지다. 이제 건강을 생각하시고,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라는 마음을 전혀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다. 그런데 어쩌겠나. 요리가 좋아서, 요리가 취미라서 접지 못 하는 것을. 그만큼 요리가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았다.큰아들이 울면서 호소했다. 쉬엄쉬엄 식당 하셨으면 좋겠다고. 점심 장사만 하시라고. 그래서 장사 잘 되던 식당 자리를 옮긴 거였다. 농업기술센터 맞은편으로 옮겨 한동안 점심 장사만 했는데 집에만 가면 전화가 계속 울렸다. 어
이달 1일부터 충북산과고 인근에 짬뽕 전문점 ‘옥현루’를 열었어요. 이 자리에 있던 신짬뽕 가게를 저희가 인수했는데요. 이전 식당처럼 똑같이 중식을 하는 거라 크게 달라진 건 없고요. 메뉴판이랑 상호, 음식 맛이 조금 바뀌었죠.중국말로 어느 동네 이름 중에 옥현이라는 곳이 있데요. 옥천에서 중식당 연다고 하니까 우리 자녀들이 상호를 뭐로 할까 찾다가 나온 이름이 옥현루였죠. 중식 경력으로는 30년이 넘었고요. 옥천에서는 남경루에서 2년, 천지성에서도 한 2년 정도 했어요.이전에 하던 짬뽕이랑 달라졌죠. 원래 낙지짬뽕이나 전복짬뽕도
지난해 12월16일부터 이원면 다목적회관 옆에 숯불고기 집을 열었어요. 제 이름이 한명순이에요. 그래서 한가네 숯불고기라고 상호를 낸 거예요. 저희는 일반 숯불고기 식당이랑 조금 달라요. 나름 구상해서 옛날 이동식 화로를 상에 올려놓고 고기를 굽는 방식이거든요. 청결하게 화로를 관리해놓으니까 손님들은 좋아하시죠.홍보 같은 거 전혀 안 했어요. 드셔본 분들이 입에서 입으로 여기 맛집이라고 알려줘서 지금까지 온 거예요. 그동안 옥천 분들도 많이 오셨고요. 대전서도 오시고, 영동서도 오시고요. 우리는 가족 단위 손님들이 많아요. 그분들이
지나고 보니 고마운 마음이 더 컸다. 그동안 잘 해드렸던 분들도, 불만족스러운 분들도 있을 테지만 오히려 도움을 받으며 살았다. ‘피시(PC)119’를 찾은 분들 덕에 지금까지 잘 버티며 지내지 않았나, 그런 고마움이 요즘 부쩍 들었다.처음에는 모든 사람을 잘해드리려고 한 게 스스로를 힘들게 한 면이 있었다. 하루하루, 1년 버티는 게 힘들었다. 지금은 5년이 됐든, 10년이 됐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이다. 주변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불편을 덜어드리고 싶었다.내가 힘들고, 아프고, 그만둔다고 하면 지금 당장 A/S가
미래를 만드는 사람이 현재를 사는 우리라면, 지금의 풍요를 만든 사람은 과거를 살아온 어르신들이다. 자식의 역할을 대변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하루 세 끼 꼬박꼬박 챙겨드리고, 여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몸이 편찮으시면 병원에 모셔다드리고, 외로울 때 말벗이 되어드리는 것. 허전했던 어르신의 마음이 만족할 수 있게 차곡차곡 채워드리고 싶었다.그동안 지역 돌봄으로서 지역에 있는 마을회관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를 거쳐 경로당이 문 닫은 시간이 길어지면서 지역 돌봄의 기능이 약화했다. 어쩌면 자식들이 부모님을 노인주간
지난 6월23일부터 읍내 정다운분식 바로 옆에 ‘우람한 삼겹살’을 열었어요. 72시간 숙성을 거친 좋은 고기를 가져다 직접 손질하는데요. 대중적으로 많이 찾는 삼겹살(180g, 1만4천원)부터 요즘 수도권에서 유행하는 꼬득목살(180g. 1만4천원) 그리고 소갈비살(150g, 1만8천원) 등 다채로운 고기를 준비했어요.골든듀록오겹살(180g, 1만4천원)은 조금 생소하실 텐데요. 골든 듀록이 세계 3대 삼겹살이라 불리거든요. 스페인산이고요. 우리 한돈보다 고소한 맛이 더 강화했어요. 마블링 모양이 조금 다른데요. 우리 아르바이트생이
지난 6월3일부터 도립대 인근에 호떡카페를 열었어요. 메뉴를 보면 일반적인 카페 느낌보다 분식집에 가까운데요. 어떤 손님은 분식집을 왜 이렇게 예쁘게 해놨냐고 그러셔요. 외관은 깔끔한데 막상 들어오면 반전이라고, 가게가 푸근해 보인다는 반응이에요. 호떡에 같이 곁들여 드시라는 뜻에서 커피를 할 뿐이라고 말씀드리죠.그동안 제 이름이 ‘점순이’냐고 물어본 분들이 많았어요. 옷에 명찰로 점순이라고 붙일까 봐요. 본사 사장님 여동생 이름이 점순이라고 들었어요. 저희는 호떡(1천500~2천500원), 핫도그(2천~2천500원), 미니도너츠(
지난달 1일부터 먹자골목에 해산물 전문 포차를 열었어요. 왕비가리비찜(5만원), 물회(4만원), 골뱅이탕(3만원), 생선구이(2만원), 소라무침(2만5천원), 갑오징어찜(2만원) 등 해물 요리를 주로 판매하는데요. 아버지께서 대전서 횟집을 하셨거든요. 아버지 따라다니면서 물건 고르는 모습을 보고 어깨너머로 배웠고요. 같이 일하는 친구도 호프집이나 식당 쪽 일을 오래 했죠.여기 먹자골목에 상가들이 많잖아요. 바로 옆 오점오닭갈비 사장님부터 주변 사장님들, 동네 이장님에게 인사 한 번씩 드렸고요. 이제 한 달 조금 넘었는데 해물 요리를
옥천의 달라진 모습 그리고 변화하지 않은 모습들이 보였다. 고향 옥천에 동물병원 개원을 결심하고 지난 1년간 여러 생각이 스쳤다. 시장조사를 하고 들어왔지만 고민이 없었던 게 아니다. 건물을 새로 짓고 투자를 해도 괜찮을까. 대학교 때부터 20년 넘게 지낸 제주의 삶을 내려놓고 온다는 건 굉장히 큰 모험이었다. 그럼에도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고향에 돌아오는 일이 요원해 보였다. 가풍리에 살고 계신 부모님의 부름도 마음을 흔들리게 했다.고향을 떠나기 전만 해도 옥천에 보신탕집이 성행했는데,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 이젠 강아지를 데리
깔끔한 파스텔 톤 인테리어에 은은한 조명이 돋보인다. 기분 좋은 향이 솔솔 풍긴다. 침대에 두 다리를 뻗고 누우면 잠이 스르르 올 것 같은 편안함. 100% 수기로 이뤄지는 피부 관리실로 기계는 일절 쓰지 않는다. 얼굴을 제외한 목, 어깨, 골반 등 전반적인 몸과 발 관리가 들어간다. 통증이나 피로감이 있는 손님들에게 추천한다고. 읍내 하나로마트 맞은편 건물 2층에 ‘한결, body’(이하 한결바디)가 지난 4월29일 개업했다.한결바디는 천안, 일산, 동탄, 대전 등 타지에서 5년 가까이 피부 마사지를 했던 이 슬(33, 읍 장야리
주방에서 경쾌한 쇳소리가 들려온다. 뜨거운 불 앞에 ‘웍질’이 쉴 새가 없다. 어떤 재료든 빠르게 볶아내는 기술은 여전했다. 1년 가까이 웍을 놓았어도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 43년 중식 외길 인생, 요리를 척척 뽑아내던 노하우는 전혀 녹슬지 않았다. 그가 다시 돌아왔다. 음식 맛을 잊지 않고 찾은 분들이 끊이지 않은 덕분이다. 개인 사정과 건강 사정이 맞물려 식당을 그만뒀지만, 익숙했던 그 길로 돌아오는 게 어쩌면 현명한 선택이었는지 모른다.40년을 넘게 한 일, 어찌 쉽게 내려놓을 수 있었을까. 먹고 살기 위해, 오로지 의식주를
돌람산 들어가는 길목 사거리에 독특한 세차장이 하나 생겼다. 일명 ‘노(No) 브러쉬’ 자동 세차 방식이다. 옥천에서는 최초, 전국에서도 100여 점포가 안 된다고 자부하는 매장이다.일반 기계 세차는 털이 달린 브러쉬로 하부를 제외한 차체 전면을 닦아주는 반면에 이곳은 브러쉬 없이 거품과 강력한 수압으로 하부를 포함한 전면 세차가 가능하다. 비접촉으로 세차하는 방식이라 흠집 걱정 없이 약 7~9분 안에 세차가 말끔히 끝나는 장점이 있다.매화리에 있던 구 ‘타이어샵’ 자리를 인수해 지난 5월1일 개업한 이곳 상호는 ‘카워시브로(Car
이 식당에 갔다 오면 마음이 ‘콩밭’에 가 있을지 모른다. 매일 만드는 고소한 두부, 지리산 화순농장에서 받아오는 흑염소 요리를 한 번 맛보면 그 맛을 잊기 어려울 듯하다. 국물이 진국이다. 담백하다.들깻가루가 들어간 바지락 순두부찌개(8천원)는 얼큰하게, 때론 순한 맛으로 취향껏 고를 수 있다. 암컷 흑염소 고기로 나오는 흑염소탕(1만8천원)은 구수하면서 깔끔하다. 비린내 안 나는 야들야들한 고기를 소스에 찍어 먹으면 속이 든든해지는 기분이다.두부 색깔처럼 하얀 간판에 ‘두부 만드는 맛집’ ‘흑염소 맛집’이라고 적은 것이 주인장의
지난 5월3일부터 캠토 옥천점이 진성아구찜 맞은편으로 확장 이전했어요. 가게가 읍내 국민은행 맞은편 건물 2층에 있었는데요. 그동안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배달 위주로 했는데 요즘은 배달이 많이 줄었거든요. 그래서 겸사겸사 삼양리에 1층 자리로 옮겼죠.아시는 분들은 지나가다가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희는 토스트를 전문으로 판매하는데요. 컵밥이나 떡볶이 같은 사이드 메뉴도 팔고 있어요. 간식용으로 토스트를 많이 찾으시고요. 배달 앱으로 컵밥이랑 토스트, 떡볶이 같이 묶어서 주문하시더라고요.캠토는 2004년 대전에 있을 때부터 했어요.
간판은 ‘임옥희 우리차’로 나갔는데요. 몇 분은 또 ‘우리차 임옥희’가 부르기 좋다고 그러네요. 그려, 그럼 두 가지 해놓고 부르는 사람 편한 대로 불러달라고 해서 그렇게 됐어요. 임옥희 우리차나 우리차 임옥희나 다 똑같죠.우리차는요. KBS1 라디오에 ‘우리차 이야기’를 스물한 번 방영했었어요. 프로그램 이름이 우리차 이야기예요. 거기 출연해서 차 만드는 방법이나 차의 효능을 알려줬거든요. 오래된 프로예요. 그래서 우리차가 마음에 와닿더라고요.차와 함께 보낸 세월이 30대 초반부터 했으니 오래됐죠. 농사하고 차 만드는 게 제 생활
이 자리에서 미용실을 한 지 7년 됐네요. 처음에는 상호를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 싶어서 친구들한테 물어봤는데요. ‘헤라’가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여러 신 중에 하나잖아요. 제우스의 아내인가 그럴 거예요. 친구가 이 이름을 추천해 줘서 ‘헤라헤어’가 된 거죠. 화장품 브랜드 이름이기도 해서 사람들에게 익숙하다고 하더라고요.저는 20대 때부터 미용 일을 접했어요. ‘까꼬보꼬’라고 아실지 모르겠네요. 예전에 ‘가위든남자’ 자리에서 3~4년 정도 했고요. 대전으로 이사 가서 거기서도 미용실을 2년 하다가 그만두고 옥천에 돌아왔죠. 읍
상가 개업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제조업 허가부터 인테리어 공사, 성분 검사·등록, 안전문 설치, 각종 디자인 제작 등등. 필요한 서류가 자꾸만 나왔다. 뭐부터 해야 좋을지 막막했다. 혼자 힘으로는 어려운 일. 든든한 우리 가족과 지인 덕분이었다. 하고 싶은 거 해보라고 밀어준 엄마 아빠, 조카가 옥천에 장사한다고 하니 만사 제쳐 두고 도와준 큰아빠, 삼촌, 작은아빠. 안전문 제작에 도움 준 지인 오빠, 로고를 만들어 준 친구들까지 감사한 분들이 정말 많다.재료 하나하나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 소중한 반려동물이 먹는 음식이기에
공설시장에 계신 어머님들이 처음 보시더니 ‘어쩌다 메리가 뭐여?’ 물어보셨어요. 초등학생들이 지은 이름인데요. 올해 2월부터 공설시장에 떡볶이집을 열 건데 무슨 이름으로 할까 물어봤죠. 이름을 서른 몇 가지 지었던 거 같아요.무슨 상회, 무슨 떡볶이집, 다양했는데 ‘어쩌다 메리’가 나오니까 아이들이 막 웃으면서 그걸로 하자고 된 거죠. 누가 봐도 떡볶이집 이름이라고요. 어쩌다 하게 됐네, 메리는 메리 크리스마스처럼 즐겁다는 뜻도 있고요.저는 ‘식생활교육옥천네트워크’라고 농축산부 산하에 있는 전국 단위 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