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걸음걸이마다 푹신거렸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숲향이 솔솔 났다. 마치 비닐 하우스가 없었더라면 눈을 감고 걸었더라면 마치 숲에 온 것 마냥 착각이 들 정도였다. 제재소에서 버리는 나무껍질(수피)을 갈아서 땅과 함께 뒤섞었다. 인위적으로 숲의 환경을 만든 거였지만, 마치 숲과 같았다. 그 곳에서 여러작물들이 사이좋게 자라고 있었다. 사과대추나무 밑에 상추가 옹기종기 자라고 있었고 그 옆에는 앉은뱅이콩과 산나물을 군데군데 심었다. 똑같은 작물로 일렬횡대 줄 맞춰 심는 것과는 다른 숲속의 정원 같았다. 오밀조밀 심어도 무리가 없다는
이석봉(75, 옥천읍 양수리)씨와 하태훈(66, 옥천읍 양수리)씨는 정다운 이웃사촌이자 동업자다. 이석봉씨는 농사경력만 40년이 넘는 베테랑이다. 질 좋은 포도·딸기 등의 농산물을 기르며 살아왔다. 현대자동차에서 근무하다가 6년 전 양수리로 귀농한 하태훈씨. 하태훈는 옆집에 사는 이석봉씨와 절친하게 지내며 농사를 배웠다고. 이들은 800평 규모의 밭에 10만주 가량의 샤인머스캣 묘목을 심었다. 6일 묘목밭을 일구는 두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군북면 항곡리를 지나 처음 나타나는 마을이 새거리, 새거리를 지나 만나는 마을이 거먹골, 대정분교가 위치한 마을이 자괏, 와정리라 불리게 된 본 마을이자 다름없는 외정이(와징이) 등 4개 자연마을이 군북면 와정리의 전부인 줄 알았다. 대청댐 수몰과 사라져서 잊혀진 마을이 이시울 마을이 있었다. 샛길로 한참 꼬부랑 부실한 농로길을 따라 2km 남짓 가야 하는 마을이니 모를 수 밖에. 전형적인 숨겨진 마을이다. 멀미가 날 정도로 높낮이가 울퉁불퉁하고 좌우 휘어진 각도도 만만찮다. 눈오고 비오면 초보 운전자는 차랑 같이 떨어지기 십상,
어정쩡한 하루가 또 지나가고 있다. 개학을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닌 이 애매모호한 시절을 그래도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것은 관계다. 캠퍼스를 거닐지 않더라도 스승과 제자의 관계와 같은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의 관계가 만들어지면서 비로소 개학을 했다는 감정을 3할 정도 느끼는 것 같다. 충북도립대 융합디자인학과 김태원 교수는 39명의 수강생을 한데 모아놓은 단톡방을 만들었다. 온라인 수업의 일환이다. 카톡방에는 교수가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질의와 응답을 계속 반복해서 하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공간을
농업예산을 더 늘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포도시험장을 중심으로 포도대학을 활용해 포도의 고장 명성을 이어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 노경구 전 농업인단체협의회장이 작고했다. 2남2녀 중 큰 딸인 옥천교육지원청 노한나 장학사는 페이스북에 ‘아버지가 림프종으로 일년여 투병하시다 새벽에 운명하셨습니다’고 별세 소식을 알렸다. 향년 78세.1943년생인 노경구 회장은 옥천읍 삼청리 중삼마을이 고향으로 2002년 농업인단체협의회장에 이어 전국포도동호회 회장도 역임했다.당시 신임 회장에 취임한 첫 일성으로 ‘농민들이 토론과 교육을 통해 선진
딱히 귀농까지 할 생각은 없었지만, 홀로 늙어가는 어머니 병수발을 하느라 들어오다 보니 눌러 앉게 되었다. 어린 시절 자랐던 고향이라 낯설지 않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으니 역시 예측할 수 없는 농사는 여전히 어려운 과제였다. 어머니가 지으시던 복숭아 한철 농사 가지고서는 먹고 사는 게 여전히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표고버섯 농사를 기획했고, 바로 실천에 옮겼다. 동이면 석탄리 산얼기 마을 인근에 나온 하우스를 인수한 후 개보수 했다. 총 6개 동을 수리한 후 그나마 쉽다는 표고 배지를 사서 쭉 나열해놓았다. 참나무에서 키우는
방학도 아니고 개학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학교의 문이 닫힌 상태에서 청소년을 만나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청소년수련관, 청소년문화의집, 그리고 평생학습원 등의 휴관이 연장된 상황에서 청소년들은 도대체 무얼 하고 있을까? 수업일수는 남아있고 밀려들어오는 과제는 청소년들을 압박한다. 행여 여름방학이 짧아지지는 않을까하는 조바심도 깃들어있다. 봄은 시끌벅적한 개학과 동시에 시작되는 맛이 있었지만, 청소년들의 활기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간만에 외출한 청소년들을 마
박혜인 학생(중2, 동이면 금암리), 조윤진 학생(중2, 판암동), 그리고 정사랑 학생(중2, 옥천읍 금구리)은 쉬는 시간이면 항상 함께 모여서 그림을 그렸다. 학기 중에는 같은 학원까지 다닐 정도로 많은 시간을 붙어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한 달 동안 만나지 못했으나 오늘은 모처럼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함께 카페에 왔다.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매일 과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 불편하고, 외출할 때마다 바깥의 풍경이 바뀌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어른들이 발표한 정책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불
주차하기 힘든 복잡다단한 읍내를 잠시 벗어나서 드라이브하기 적당한 코스에 ‘해뜨는집’이 있다. 대접하고 싶은 사람에게 ‘대접받았다’는 느낌을 주려면 약간 정원이 있는 특별한 ‘예약만이 가능한’ 그런 맛집을 소개하는 게 좋다. 농촌의 정경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정원 마당에 발을 들여놓다 보면 머리 아픈 일상은 간단히 치유가 된다. ‘콧바람’ 한번 쐬며 이리저리 둘러보기 바쁜 찰나에 군침이 도는 담양식 석갈비가 떡하니 밥상위에 차려진다. 해뜨는 집은 그냥 식당이 아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최규호(65)씨의 삶을
사진은 사람들이 지나치는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는 힘이 있다. 그냥 지나치던 작은 풀꽃에 별빛처럼 빛나는 꽃잎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거나, 기억 한 장면을 되살려 마음 속 그리움을 달래준다. 이원형(61)씨는 고향인 옥천에서 사진으로, 농업으로 생명을 불어넣고 키워내고 있다. 본연의 색감과 선을 살리는 데에 집중한 그의 사진은 피사체가 가진 매력을 극대화해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우리고장 농업인이라면 그의 사진을 한 번쯤 봤을 지도 모른다. 농업기술센터 소장실 안에 커다랗게 걸려있는 ‘옥천가을풍경’ 사진이 이원형씨가 찍은 것이기 때
편집자주_창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많지 않은 경험은 독이다. 하고싶은 의지가 솟구칠수록 위험하다. 청년들은 자본금이 없기 때문에 위험부담이 더 크다. 창업에 잇따른 실패는 자존감을 떨어뜨리면서 다시 일어설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취업은 어렵고, 창업한 청년들에게 정책적 버팀목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올해부터 옥천군에서 연간 600만원씩 2년 동안 지원할 수 있는 정책을 펴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한달에 50만원까지 월세를 지원하는 것으로 적잖은 지원이다. 최근 6개월 이상 군에 주민등록과 거주사실이 있고, 3년 이내
매일같이 새벽 4시 전에 일어나서 누군가를 실어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15년 동안 아무런 댓가 없이 지속했다면 그것은 진정 ‘마음’일 것이다. 무엇이 필요한 지 살피는 것도 어렵지만, 제안하고 한두번 실행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한다는 것은 여간해서 어려운 일이다. 대전 역 앞 새벽시장에 동네 할머니들 운송을 매일같이 챙겼다고 하면 ‘이 사람 뭐하는 사람인가’하고 다시 보게 된다. 새벽 4시에 출발해 8시 쯤 돌아오는 일이니 만만찮은 일이다. 고스란히 귀한 잠잘 시간과 상쾌한 아침 시간을 빼앗기는 것인데 불구하고 그렇게
군북면 자모리 출신 김길평 증약초 전 교장이 향년 7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유족들은 지난 3월12일 저녁 7시에 지병인 전립선암이 악화되면서 운명했다고 전했다. 김길평 전 교장으로 증약초 12회 졸업생으로 1962년 4월4일 단양보발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으로 40여 년의 교직생활을 하고, 2005년에 정년퇴임했다. 고향 옥천에서는 64년 신서초를 시작으로 추소, 삼양초, 이원초, 안남초, 능원초, 옥천교육청, 영동 화곡초 교감, 영동 이수초, 양산초 교장으로 재임하다가 모교인 증약초에서 정년 퇴임했다. 68년 과학상자가 우
확신했지만 알 수 없는 미래였다. 2017년 지역문화 창달과 예술발전을 위해 문을 연 사회적기업 ‘고래실’은 고생길이 뻔히 보이는, 어쩌면 지속하지 못할수도 있는 그 길을 나아갔다. 바닥을 모르고 위축되는 출판산업, 그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힘들다는 잡지를 만들고 축제와 강연, 전시 등 지역문화 사업을 시작했다. 어떤 것도 소위 돈 되는 사업이 아니었고 성공 또한 보장되지 않았다. 잘 하면 본전, 못하면 지역사회에서 오해와 비난을 받기 좋은 사업들도 있었다.고래실 창립 이후 어떤 이들은 3년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 했다. 3년은
오전 시간은 마스크 구매자들로 약국 문이 쉴 틈 없이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했다. 12일 오후 1시40분, 마스크 재고가 모두 소진되고 나서야 파맥스약국 나인식 약사는 숨을 돌렸다. 5부제 시행 이후 상황이 한결 나아졌다지만 그래도 전쟁은 전쟁이다. 약국 한켠에 접이식 책상을 펼치고, '어찌저찌 오늘 마스크 판매도 다 끝냈네요' 멋쩍게 웃는다. 한때 부르는 게 값이었던 마스크 가격을 진정시키기 위해 정부는 1천500원에 구입할 수 있는 이른바 약국을 통한 '공적 마스크'판매를 시작했다. 코로나19 방어선 최전방에 약사들이 투입된 것.
농사 짓는 고된함은 음악으로 날린다. 남편 김명성(50, 안내면 동대리)씨는 드럼으로 경쾌한 리듬을 만들고, 아내 정순점(58, 안내면 동대리)씨는 젬베(아프리카에서 축하연과 제식에 사용하는 큰 성배 모양의 북)로 화음을 얻는다. 농사 짓느라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지만, 음악을 향한 부부의 열정 덕분에 아안내면 동대리 '드럼치는 농장'에서는 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이들 부부가 처음 안내면 동대리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한 건 2017년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이들 부부는 농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정순점씨는 35년간 대
[편집자주] 독자 한 분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고사미’코너가 사라졌냐고. 스리슬쩍 없어진 코너가 못내 아쉬웠나 봅니다. 그래서 다시 부활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데 서로 칭찬하면서 춤추는 옥천 한번 만들어보아요. 이번에 군북면사무소를 다녀왔습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군북면(면장 박영범) 긴급민원대응반 김기영(68, 군북면 항곡리), 박종근(66, 군북면 소정리)을 두고 군북면 공무원들이 하는 말이다. 긴급5분 대기조처럼 군북면에 무슨 일이 생기면 번개처럼 달려가서 민원을 순식간에
그는 키가 훌쩍 큰 농구선수였다.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전도 유망한 농구선수가 될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큰 공대신 펜을 잡았고 넓은 코트 대신에 책상안에서 더 드넓은 원예학의 꿈을 키워갔다. 농구도 하면 할수록 늘긴 했지만, 공부는 하면 할 수록 깊어갔다. 충남대 원예학과에 입학하고서 석사까지 마치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배재대 원예학과 교수로 11년을 근무했다. 이후 2009년에는 꿈에 그리던 모교인 충남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고, 올해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73명이 직접 뽑은 두번째
[옥천, 청년을 만나다] "제가 바로 청년이거든요. 저와 제 친구들의 문제지요. 그래서 굳이 멀리 갈 필요 없이 제 친구, 선후배들의 이야기만 귀담아 들어도 절반은 먹어들어가겠다 싶었어요,"그는 청년 정책을 설계하고 시행하는 주무담당자이자 청년 당사자이다. 더구나 삼양초, 옥천여중, 옥천고등학교를 졸업한 옥천 토박이다. 옥천 토박이 청년들이 과 유사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있어 정책을 펼치는데도 많은 장점이 있다. 이은결, 유명 마술사와 동명 이인인 군 인구청년대응팀 이은결(31, 옥천읍 문정리) 주무관은 한때 유튜버가 꿈(얼마전 옥천군
“아직 과도기라 그럴거라 짐작하지만, 청년 정책이 제대로 잡히려면 지자체에서 조금 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의견 수렴은 하려고 노력하지만, 반영이 되는데는 더디고 반영이 되지 않을 경우엔 왜 안 됐는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설명이 부족한 것 같아요”이제 막 출범한 청년네트워크 2기 회장에 선출된 전재웅 회장은 "지역의 청년정책을 구상하는데 지자체의 의지가 상당부분 중요하다”며 “그런 의지와 실천이 청년을 모아내게 하는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이 만들어진다 해도 홍보가 안 되어 사람들이 잘 몰라요. 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