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웹툰을 좋아하는 옥천 토박이 이지연(옥천여중1, 읍 장야리)씨. 움짤(움직이는 짤방. 인터넷에서 움직이는 사진이나 그림 등을 이르는 말)을 만들거나 웹툰 연재를 위한 구상을 종종 한다. 올해 안에 네이버 도전만화에 웹툰 연재하기가 목표인 그는, 옥천에 독서 모임과 만화·애니메이션을 배울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뒤 지난달 4일, 옥천신문사 2층에서 지연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린 시절 떠오르는 기억이 있나요? 가족들과 옥천 명소를 놀러 다닌 거요! 특히 둔주봉이 아름다웠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저학년 땐 주로 친구
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 부티탄화(39) 회장의 전화기는 쉴 틈이 없다. 다양한 부탁이 들어온다. 학교에서 나온 안내문이 이해가 안 된다며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주는 친구, 외국인 계절 근로자한테 사업 내용을 설명해 줄 수 있냐는 공무원의 전화까지. 귀찮을 법도 하지만 부티탄화 회장은 지치지 않는다. 도움을 주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백신 예약을 놓친 이주여성을 위해 병원마다 전화해 잔여백신 예약을 해주었다. 법원에서 이혼 소송 중인 이주여성의 통역을 위해서 휴가까지 내고 법원에 같이 가주었다. 오직 ‘친구’들을 위한 일이었다.“무슨
"문제는 있었지만, 이를 고쳐서 써야지 예산과 인력을 축소해버리면 사실 장애인의 발을 끊어 놓는 것과 진배없거든요. 지체장애인들의 발이 되어준 차량지원을 다시 복원했으면 합니다. 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가 생겨서 운영하고 있지만, 경증 장애인들은 이용을 할 수가 없거든요. 가장 필요한 지체장애인들의 발이 되어줬던 차량지원을 다시 했으면 좋겠어요." 퇴직공무원 출신으로 (사)충북지체장애인협회 옥천지회장을 맡은 육동일(74, 청성면 대안리)씨는 다른 시군에 비해 더 열악한 지원으로 더 어려워졌다면서 쓴 소리를 내뱉었다. 2015년 육동일 회
그림이나 음악을 창작하는 예술가들은 특유의 아우라(Aura)가 있다. 세계관이 확고하고, 하나의 작품으로 실현한 ‘단독성’을 통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을 선사한다. 예술적 창조는 인간이 추구하는 자유라는 가치와 맞닿아 있다. 아무리 삶이 팍팍하고 바쁘더라도 틈틈이 시간을 내 공연이나 예술 작품을 찾아보는 이유다. ‘맞아, 현실은 어렵더라도 꿈마저 내려놓으면 안 돼’ 또는 ‘나도 이 예술가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마음만 가져가도 창작 활동이 가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무언가 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4년이 지난 지금 문득 아버지를 다시 기억하고 싶어 신문사로 연락했다는 서강홍(71, 안남면 도농리)씨. 그 시절 국민학교 5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읽고 쓰는 법과 먹고 사는 법을 가르쳐 준 아버지에게 늦게나마 감사와 존경의 표시를 하고 싶었다고. 지난달 17일 신문사로 ‘아버지가 한자 훈장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하는 전화 한통이 왔다. 서강홍씨의 아버지 서우범씨(1920~2017)는 성균관 관장을 지낸 한국홍문원 박종훈 원장에게 한문 실력을 인정받은 실력자다. 현재의 성균관은 전국 항
중학교 3학년 시절, 뮤지컬을 해야했는데 배우는 죽어도 하기 싫었다. 배우를 피하기 위해 작가, 소품, 음향감독 중 하나를 지원해야만 했다. 김언빈(18,읍 장야리)씨는 음향감독에 지원했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배웠기 때문에, 음향감독을 하는게 그나마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후로 그는 약 1년가량 작곡 공부를 했다. 그는 그 1년이 “참 즐거웠다”고 했다. ■ 6년 간의 음악인생이 끝나고 작곡의 세계를 만나다뮤지컬 장면에 어울리는 음악을 골라야 하는데, 마음에 드는 음악이 없었다. 직접 작곡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작곡 프
'대학입학'과 '취업', 늘 미래에 저당 잡힌 공교육은 현재의 행복을 유예하게 만든다. 부적응자들은 낙오자로 낙인찍힌 채 자존감을 잃고 결국은 자퇴를 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획일화된 교육, 똑같은 목표로 내달리는 교육이 아닌 다른 교육을 만났다. 두 사람은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지금 당장 행복하다고 했다. 그들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고 말하지 않았다. 거꾸로 '즐길 수 없다면 어떻게든 피하라'고 말했다. 유예하지 않는 행복, 지금 당장 학교 다니는 것이 즐겁다는 정말 보기 드문 청소년을 만났다. 바로 이웃 금산의 대
청년의 꿈터 충북도립대학교. 여기 기존 학보사와 방송국을 합친 미디어센터가 있다. 계절마다 교내 소식지 「청춘」을 발간하고, 교내·외 홍보 영상을 만든다. 학기 중에는 다들 바빠서 여름방학이 되자마자 영상 역량 강화 교육을 받는다. 외부 강사가 6~7주 정도 영상 촬영·편집을 가르쳐 주고. 장비와 프로그램은 모두 학교에서 지원한다. 마침 한 영상 프로젝트를 마치고자, 부원 열두 명 중 네 명이 9월10일 학교에 모였다. 편집장 이태한(26, 전기에너지시스템과)씨와 김재훈(20, 전기에너지시스템과)·송근형(20, 기계자동차과)·최나미
“주민 손으로 뽑힌 지자체장이 정치 기간에는 군정현안에 대해서 선거공약으로 만들곤 합디다. 그런데 4년이든 8년이든 선출직 임기가 끝나고 나면 그분들이 군민을 버리는 식으로 하고 있는 실정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나 몰라라 하는 식으로 공약을 설정하고 주민들은 호기심에 다가갔지만 몇 번이고 상처를 받아왔습니다. 주민들을 대상으로 선거공약으로만 말해왔던 2~3중으로 묶여있는 대청호 환경규제를 개선하고, 수계지역의 오폐수시설 설비를 군 차원에서 지원해 주어야 합니다. 또 방아실~소정리를 잇는 가교를 설치해서 분단된 마을을 이어야 하며,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이 몇 날 며칠 이어졌다. “올해는 될까?”, “이번에도 안되면 어떡하지?”, “내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서영준(27,옥천읍 문정리)씨를 한동안 옥죄어 왔다. 꿈을 향해 내딛는 발걸음이 어느 날에는 가시밭길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꿈이 소방관이라고 했다. 사실 다시 생각해 보면 자신이 왜 소방관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모르겠던 날도 있었다. 다만, 위험에 빠진 이들을 위해 피땀 흘리며 그 한 몸, 활활 타오르는 화구로 망설임 없이 내던지는 그들의 열정에 그는 빠져들었는지도 모른다. “
20대는 도전의 시기라고들 이야기한다. 그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기라고. 흘러간 시간은 추억을 남기고 때로는 아쉬음을 짙게 남기기도 한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도 있는 20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알차게 보내고 있는 김현우(27,옥천읍 문정리)씨를 만나봤다.“후회 없는 20대를 보내보고 싶어요. 지금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하면 또 언제 지금처럼 즐겨볼 수 있겠어요?”김현우씨는 취업에 대한 큰 고민이 없다. 물론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낼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김
■ 해양측위정보원은 어떻게 오게 됐는지?20살 때는 청주폴리텍(한국폴리텍 청주캠퍼스)을 다녔다. 그 후, 진로희망 없이 직장을 다니다가 충북도립대학교 소방행정과에입학했고 직장도 소방 쪽으로 잡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소방관련 전문직을 찾거나 소방공무원등을 생각했지만 나이 때문에 늦었다고 생각해 소방 전문직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우연히 공공기관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한 해양측위정보원에 붙게 될 줄은 몰랐다. ■ 현재 하는 일은 어떤 것인지?UPS(무정전 전원 장치: 안정된 교류 전력을 공급하는 장치)랑 비상발전기 같은 변전실을 일일
■ 해양측위정보원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현재 시설 관리직을 담당하고 있다. 기계, 소방, 가스 등을 유지·보수·관리하는 기술직이다. ■ 지원자들이 많았을 것 같다.채용 당시 지역 제한이 걸려 있어, 옥천에 주소지를 둔 사람만 지원이 가능했다. 제가 지원했을 때는 4:1로 무난한 편이었다. ■ 도립대학교 학생이라고 알고 있는데 현재 졸업을 하셨는지?주간학교(오전9시~오후6시)로 입학해서 기계자동차과 1학년 재학 중이다. 우연히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붙어가지고 현재는 야간반으로 변경한 상태다. 취업하면 조기 졸업을 시켜주지만,
서울, 청주서 살다 2009년에 옥천으로 온 홍현진(47, 동이면 평산리)씨. 지금 여기서 (사)충북장애인부모연대 옥천군지회(이하 지회) 회장을 맡아, 지회 바하센터 운영을 총괄하고 있다. 주로 타지에서 주로 교회 전도와 히브리어·헬라어 강습을 했던 그는 왜 옥천에 왔을까. 그리고 발달장애인의 삶을 위해 최전선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 다들 꺼렸던 시골의 시골… 지금은 떠나래도 안 떠나‘조금만 기다려라. 그러면 말문이 트인다.’ 어른들은 둘째 아들에 대해 이렇게 조언했다. 그러나 일곱 살 때까지 트이지 않자, 남편의 고
지난 6일 옥천군노인장애인복지관(이하 복지관)에서 디지털배움터 서포터즈로 일하고 있는 한상훈(42)씨를 만났습니다. 그는 고3때 발병한 정신장애로 2년 전 병원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퇴원 후 꾸준히 약을 복용했고, 컨디션을 회복한 그는 최근 옥천군노인장애인복지관 일자리 사업에 지원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중입니다. 한상훈씨의 요청에 따라 사진은 싣지 않기로 했습니다. 상훈씨는 옥천에서 나고 자라 옥천공업고등학교와 충북도립대학교를 졸업한 옥천토박이다. 고등학교 때는 전자, 대학 때는 정보통신을 전공했다는 그는 현재 옥천읍 관성
옥천을 떠나고 싶지 않지만, 상황으로 인해 옥천을 벗어나고 있는 청소년들이 대개 있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떠나게 하는 것일까? 강다현(17, 읍 문정리) 씨는 옥천여자중학교를 다니면서 활동했던 관악부를 계기로 악기에 취미를 붙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계속해 악기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 그는 옥천에 악기연주학원이 없다는 것을 알고 대전으로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옥천에서 취미를 찾은 것인데 취미를 계속해서 즐기기 위해서 대전으로 가야 하는 사실에 아쉬운 상황이다. 그런 그가 옥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것을 필요로
수업이 다 끝난 후 친구들과 함께 하교하는 시간은 누구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일 수도 있지만, 김가람(16, 읍 죽향리) 씨에게는 10년 동안 바라왔던 로망이었다. 그는 10년 동안 기계체조를 전공했다. 오랫동안 하던 기계체조를 그만두고 16살이 된 지금, 처음으로 친구들과 운동이 아닌 소소한 대화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는 삼삼오오 모여 오늘 저녁은 뭘 먹을 건지, 어디 카페를 갈 건지, 오늘 수업 시간은 어땠는지 나누는 시간이 재밌다고 말한다.그는 7살 때 접한 발레를 계기로 기계체조에 발을 담그게 됐다. 유연성이 좋은 그를
고민과 생각이 점점 많아지고, 모든 정답을 스스로 찾아나가야 한다는 부담이 적지 않은 요즘이다. 하지만 송지연은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여유 있게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했다. 단호한 말투와 살아있는 눈빛에서 강함을 느꼈다. 그럼에도 그가 그린 그림들은 포근하고 부드러웠다.■ 낙서장에 채워진 그의 취미들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송지연(18, 읍 수북리)씨는 핸드폰에서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찾아 보여줬다. “물감이랑 붓을 사기는 했는데 다루는 법을 몰라서, 내 마음대로 그리고 있어요. 역시 그림을 제대로 그리려면 미술학원을 다녀야 하나 봐
그는 말한다. 어쩌면 그간 달려온 자신의 길이 누군가에게는 무척이나 평범하고 당연한 삶이라 느껴질지 모른다고. 그는 또다시 말한다. “내가 대단한 학벌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구보다 특별한 직업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다만, “그 누가 뭐라 할지라도 나 자신에게 만큼은 내가 걸어온 이 길이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그에게는 언제나 자신만의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그 과정에 길이 없다면 어떻게든 ‘개척’해 한 발씩 내디뎠다. 그는 말한다. “내가 특별해서 금세 목표를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 나를 지지하고 응원
가끔씩 글쟁이가 아니라 그림 그리는 화가로 변신하는 날이 있다. 그날도 마음의 물감을 풀어 정물화 한 점 그렸다. 나란히 옹기종기 앉은 장독대, 투박한 항아리였던 장독대를 한 폭의 그림 속에 앉혔다. 낮은 담장 아래 봉숭아꽃 옆에 앉혀 놓으니 근사하다.“어르신 봉숭아 꽃 너무 예쁘네요. 잘 가꾸셨어요.”“아니 내가 안 심었어. 저절로 폈어.”비바람이 휘몰아쳐도 눈보라가 밀려와도 때마다 그 날이면 알아서 착착 자기 자리를 지켜. 변덕스럽고 궂은 날 좋은 날 유난떠는 사람들보다 훨씬 양반이야”어르신도 꽃들에게 인생을 배우고 우리는 집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