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알면 알수록 묘한 힘이 있다. 다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을 이어주는 힘이랄까. 생각하는 것도, 쓰는 언어도 다른 이들을 하나로 유대하게 해주는 특별한 마력이 음악에 깃들어 있다. 유연하면서 강한 무언(無言)의 힘. 알게 모르게 타인을 경계하고, 구분 짓게 하는 세상에 사람들은 음악을 더 갈구하며 얼어있던 마음을 녹이는지 모르겠다.옥천엔 기타 공연이나 노래 공연이 많다. 트럼펫은 조금 낯설다. 흔히 아는 국민의례부터 군대 기상나팔까지 단번에 들으면 익숙한데 옥천에선 생소하게 느껴지는 악기 중 하나다. 옥천에 트럼펫 연주자로 활
우연한 만남이었다. 지난해 6월쯤이었나. 옥천전통문화체험관에 열린 김성장 시인의 손글씨전 개막 행사 때였다. 짙은 파란색 원피스에 밀짚모자. 단정한 복장에 세상에 때 묻지 않은 온화한 인상. 방문객들 사이에 그는 조용히 작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다소곳해 보였다. 옥천에 사는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김성장 시인을 보러 타지서 온 지인으로 짐작했다. 당시 현장 분위기를 담아내고자 인터뷰 차 말을 붙였다.10여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행사 때 김성장 시인과 인연이 닿아 전시장에 왔다고 했다. 시를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
충만한 삶의 기쁨을 안겨주는 곳에 머물고 싶어 한다. 그에게는 옥천이 그런 곳이었다. 비로소 숨 쉴 틈이 생겼던 걸까. 얼굴빛에 밝고 편안한 기운이 전해졌다. 옥천에 머무르자 삶이 여유로워지고 시야는 더 넓어졌다. 옥천서 만난 물과 바람이, 풀과 구름이, 일출과 석양의 장관이 그를 행복하게 했는지 모른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바라보는 것만으로 평온함이 찾아오는 옥천에 매료돼 있었다. 예술의 깊이는 점점 무르익어갔다.‘천연염색으로 작업하는 작가’라는 수식어는 어쩐지 부족한 감이 있다. 천연염료가 되는 식물을 옥천서 채취
1929년생, 출생년도만으로도 그 울림이 묵직한 95세 어머니.어머니의 작은 어깨, 와락 안아주고 싶어 잠시 주춤했다. 신문사에서 온다고 입술을 바르고 계신 어머니. 뒤돌아보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자마자 열다섯 살, 큰 애기의 얼굴이 떠올라 콧등이 시큰했다. 세월이 야속하실까? 그리우실까? 너무 고운 어머니 모습에 고마움이 밀려오는 건 어떤 심정이었는지 나에게 다시 묻는다. 아마도 곱게 나이 드신 어머니에게 보내는 존경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우리 며느리 이거여”라며 엄지를 추켜세우신 고부의 정도 어머니의 고운 모습을 만든 힘이 되었
‘다 보여주지 않는 것.’ 사진을 찍어 와야 하는데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일까. 여타 사진 동호회와는 차원이 다른 주제였다. 숙제를 안은 사람들도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탁 트인 하늘을 올려다 봐도 색깔이 있고, 구름이 있고, 태양이 있고, 날아다니는 새들이 있는데 말이다. 사진에는 무언가 대상이 있기 마련이거늘 ‘다 보여주지 않는 것’이라니. 성능 좋은 카메라에 아름다운 식물과 풍경을 담아 오는 다른 모임들과 성격이 달랐다.보이지 않는 부분을 찍어야 한다, 어떤 의미일까.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마지막 순간까지 생각하고, 고
편집자 주_영동 매곡면을 돌아다니던 중 전문 바리스타의 카페 ‘물한모금’을 발견했다. 카페에 들어서면 진한 커피 향이 진동한다. 직접 볶은 원두로 커피를 내리는 최길호 대표(38, 대전 죽동)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냥 카페라고 하기보다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요. 커피도 마시고 고기도 구워 먹고 강아지 데리고 와서 놀기도 하고 밑에 계곡에서 쉴 수 있는 그런 공간이요.” 카페 ‘물한모금’ 대표 최길호 씨는 작년 대전에서 내려와 영동 매곡면에 카페를 차렸다. 짙은 녹음 사이로 새하얀
편집자주_옥천의 이웃 마을인 영동으로 탐방을 왔다. 더위를 피해 정겨워 보이는 이름의 한 카페에 들어섰다. 산울림 마을협동조합이 직접 운영하는 형태로 로컬푸드에 대한 애정이 카페 곳곳에 묻어나있다. 그곳에서 시원한 팥빙수를 먹으며 영동 상촌면의 주민을 만나 상촌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들었다. 장마가 끝나고 뜨거운 폭염이 시작된 지금, 카페에서 파는 팥빙수는 그야말로 하늘에서 떨어진 선물 같다. 여기 그 선물을 푸짐하게 주는 영동의 한 카페가 있다. 이름마저 정겨운 카페 이웃상촌에 들어서면 모든 테이블이 인절미 수제 팥빙수(1만원)를
완벽에 도달하려고 스스로를 다그쳐야 했다. 대학 입시, 실기 시험, 연주 수업, 각종 경연대회가 남긴 상흔이었다. 빈틈없이 완벽을 추구하려는 예술가의 강박. 어쩌면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할 관문인지 모른다. 클라리넷을 전공한 김연주(39, 읍 가화리) 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악기 부는 게 좋아서, 합주하는 게 좋아서 시작한 음악인데 어느 순간 치열함만 남아 있던 게 아닌가. 멈춰 서서 주변을 돌아봤다.옥천에 오기 전 ‘헬로 셈(Hello SEM)’이라는 단체에서 장애아동·청소년 오케스트라 강사를 한 적이 있다.
화창한 날씨를 자랑하던 3일 오전 11시. 서대1리 한 농가에 복숭아 예비적과 작업이 한창이다. 이날은 모처럼 하늘이 돕는 날씨였다. 약 4천500평 규모에 복숭아나무들이 줄지어 있던 농장에 들어서자 청국장마냥 구수한 뽕짝 메들리가 들려온다. 시기상 잘 익은 복숭아를 만날 순 없었으나 손톱 크기만큼 자란 초록색 아기 복숭아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이제 바쁜 시기가 찾아왔다는 표식이다. 곧 있으면 사람들 불러 솎기 작업이 진행된다.몽실몽실복숭아농장. 서대리를 지나가다 보면 큼지막한 나무 입간판에 특이한 농장 이름을
구순이 가까운 어머님은 기품 있고 아름다우셨다.‘’나 할 얘기도 없는데“ 유년의 기억부터 조근조근 되짚어 주시는 어머니는 철학자셨다. 기억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추억 하나하나에 그리움을 담아내셨다. 인정 많던 친정 오라버니의 죽음을 말씀 하실 때 끝내 울음을 터뜨리셨다. 가련한 사람들이 너무 많던 세대라 간간이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 때문에 지난 시절 이야기를 꺼내기가 두렵다고 하셨지만 이제 그리움이 되어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고 자조하셨다. 우리 삶의 무게는 평생을 통틀어 본다면 비등비등하지 않을까라고 단언하시며 그
선수 출신이 아니지만 수영을 깊게 들어갔다. 물살을 가로지르는 짜릿함이 여느 운동과 달랐다. 옥천을 대표해 도민체전 수영 선수로 참가했고, 옥천수영장 강사로도 일했다. 취미로 수영을 접했는데 관련 자격증까지 취득해 전문성을 길렀다. 삼양초, 옥천중, 옥천고를 졸업한 조지훈(33, 읍 장야리), 조성훈(32, 읍 장야리) 형제 이야기다. 이들은 학창 시절 충북소년체전 태권도 대회에 참가하는 등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다.조지훈 씨는 수영 경력 15년차다. 지난해까지 옥천수영장 강사로 일했던 그는 올해 개인 사정으로 그만뒀다. 지훈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똑같은 일상은 없다. 사물도 그렇다. 일상에서 흔히 마주하는 사물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자태를 드러낸다. 관심을 두지 않아 모를 뿐이다. 보는 시선에 따라 달리 보인다. 정지된 시간의 기록을 남기고 들여다보길 반복한다. 사물의 본질과 존재를 묻고 가치를 찾는다. 새로운 영감을 주기도, 때론 향수를 자극하기도 한다. 어떤 순간이 그대로 멈춘 사진 속에 생명의 기운이 꿈틀거린다.이 광활한 우주에서 지구상에 있는 모든 존재는 한 줌 먼지와도 같다. 싱싱한 야채든, 시든 야채든 존재의 가치를 주고 싶었다. 익을
봉사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 봉사하는 날이 기다려졌다. 지인들과 어디 놀러가는 일정도 뒤로 미뤘다. 내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지만 기꺼이 썼다. 언제부턴가 봉사가 삶의 큰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사람 만나는 일이 즐거웠다. 정성껏 만든 빵을 드렸을 때 행복한 미소를 짓는 분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덩달아 좋았다.시설에서 만난 한 어르신이 대뜸 빵이라고 불렀다. ‘선생님, 왜 빵이라 부르세요?’ 물어보면 ‘선생님, 빵 만들어줬잖아. 그래서 빵이라 하는 거야’ 그러신다. 그분 얼굴을 기억도 못 하는데 그분은 날 기억하고 있었다.원생들은 가장
지난 3월10일 오전 10시 안남면 종미리에 있는 농장에 한 청년이 땀 흘려 일하고 있다. 그는 약 650평 규모 농장에 심은 꽃들이 잘 폈나, 병해충은 없나 살펴본 뒤 오전에 수확을 마칠 계획이다. 지난해 8월 온실 세 통을 설치하고 10~11월에 심은 꽃들을 약 5개월이 지나 출하 작업에 한창이다. 이 꽃들은 경매장에 가거나 온라인 판매가 이뤄진다. 옥천, 대전 꽃집에도 나간다. 최근 로컬푸드 교육을 마쳐 로컬푸드 꽃 납품도 성사했다.안남에서 ‘청춘꽃팜’이라는 이름으로 화훼농장을 운영하는 김지훈(29, 읍 마암리) 씨는 지난해
초심을 잃고 싶지 않았다. 술을 빚는 즐거움도 일상처럼 반복되면 타성에 젖곤 한다. 전통주는 자기만족으로 밀고 올라가는 뚝심이 있어야 지속한다. 처음 술을 빚었던 그때 설레었던 감정을 되살리고 싶었다. 동기 부여는 누가 대신해주기 어렵다. 만족스러운 시골 생활, 그럼에도 안주하지 않는 도전자의 자세가 때론 필요하다.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 하나 던져본다. 떨어진 자리에 생긴 작은 물결이 파동을 만들고, 그 파동은 단조로운 삶을 바꾸는 활력소가 되어 돌아온다.우리고장에서 향수을전통주교육원을 운영하는 김기엽(59, 군북면 국원리) 소장에
‘물꼬 보러 갈 사람?’ 여름만 되면 아버지가 이른 새벽 4시에 마당에서 부른다. 누구라고 할 것도 없었다. 6남매 중 막내딸이 자동으로 튀어 나간다. 지금은 수로가 다 돼 있지만 옛날에는 윗논에서 아랫논으로 물을 받았다. 저수지에서 내려온 물이 윗논에 차면 아랫논에 물길을 텄다. 논에 물이 너무 많거나 적을 때를 대비해 주변을 살피러 다녔다.아버지와 손 붙잡고 논둑길을 걷던 옛 시절, 어느 순간 그리움이 됐다. 모가 사람 키만큼 자랄 때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풍경. 그 상쾌함은 아침에 걸어본 사람만이 안다. 고향이 그리웠을까. 정
‘집간장‘ 어머니는 얇은 매직펜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쓰셨다. 플라스틱 콜라병에 직접 담근 간장을 붓고 ’집간장‘이라고 써서 색깔 없는 테이프로 붙이셨다. 자녀분들에게 준다시며 애미가 줄 선물은 건강한 당신과 정성스레 담근 된장, 고추장, 간장이라시며 옅은 미소를 보이셨다. 당신 스스로 60년을 담갔으니 요새 애들 말로 나도 쉐프라고 하시며 한 마디 더 건네신다. “한 숟가락 또르르 따라 넣어도 국 맛이 달라” 소고기 미역국에 한 숟가락 주르룩 넣으면 그 맛이 또 별미라고 그저 60년을 담았더니 진한 맛이 우러난다고 무심히 말씀하신
“나 특별한 얘기도 없는데...” 전화기 너머로 말끝을 흐리셨지만 1층까지 마중 나오신 어머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어머니의 반달 같은 눈웃음에 덩달아 눈웃음으로 화답했다. 마스크가 원(怨)이로다.“나 작년까지는 펄펄 날라 다녔는데...” 하루하루 지나는 시간이 너무 귀하다고 우회적으로 마음을 드러내셨다. 노인 일자리활동과 포크 댄스로 건강을 지키시고 실버기자단이라 시간도 유익하게 쓰고 계셨다. 去頭截尾(거두절미), 멋진 어머니... ■ 결핍투성이던 유년, 어린 눈에 그 넓던 신작로는 그저 좁은 골목길이더라충북 오송이 고향인
한때 자동차 소유가 꿈인 시절이 있었다. 일명 ‘마이 카(My car)’ 바람이 불어온 건 불과 몇 십년이 채 되지 않는다. 88 올림픽을 기점으로 자동차 대중 소비는 급증했고, 오늘날 인구 2명 당 1명 꼴로 자가용을 보유한 모습에서 우리 현대사의 한 단면을 보게 된다.시내 도로를 활보하는 자동차 풍경이 익숙하다. 그런데 옛날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40년 전 우리고장에 자동차가 딱 아홉 대가 있던 시절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도 아니고 자동차가 아홉 대라니! 19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자동차는
인포리 관골, 생경한 지명이 새겨진 돌이정표를 끼고 마을에 들어섰다. 굳이 네비게이션의 도움 없이도 좁은 골목 끄트머리 집이 어르신 댁이라고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관종 정순애 큰 며느리 서기관 승진’이라고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산비탈 길에 지어진 작은 집에 걸린 현수막을 보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흐뭇하셨을 어르신들, 부모의 뒷모습을 보면서 열심히 살았을 자녀분을 생각하니 맥락 없이 뭉클해졌다. 순둥이 같은 누렁이가 어슬렁거리는 한적한 시골집, 누렁이는 낯선 사람을 봐도 짖지도 않은 것을 보니 밥값은 제대로 못하지만 노부부의 성